1년에 한 번 정도는 뮤지컬을 관람한다. 티켓값은 나날이 오르고 티켓팅도 점점 치열해지지만, 2시간 넘게 귀를 가득 채우는 뮤지컬 넘버들의 향연은 현장에서 들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기에 매번 공연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관람한 뮤지컬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비타>로, 지난 11월 7일에 개막하여 1월 11일까지 공연 중이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실존 인물 ‘에바 페론(에비타)’의 삶을 따라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 게바라를 모티브로 한 ‘체’라는 나레이터가 극의 흐름을 안내한다.
한국에서는 2006년에 초연되고 2011년에 재연되었으며, 올해는 그 이후 14년 만에 돌아온 반가운 공연이었다.
비록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에바 페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이 공연을 택한 이유는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제작한 뮤지컬이기 때문이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작곡한 뮤지컬 음악계의 거장으로, 특히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조셉 앤 테크니칼라 드림코트> 등이 있다. <에비타>는 잘 모르는 극이었지만 그의 넘버라면 귀가 즐겁지 않을까 하여 선택하였고, 그 기대는 역시 틀리지 않았다.
<에비타>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스루(sung-through) 형식에 있다. 총 33곡의 넘버 동안 각 인물의 테마가 등장하며,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하고 변주되었다. 사실 아무리 좋은 음악이어도 2시간 이상을 집중하여 듣는 것은 상당히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이 송스루라는 형식의 한계로 느껴졌으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노래 중간중간에 대사가 섞여 있는 여타 뮤지컬의 형식이 관객 입장에서 집중하기에 더 수월하였다.
다만 <에비타>에서는 이러한 지점을 고려하여 나레이터의 다양한 동선, 앙상블과 주연 배우들의 화려한 춤을 강조하는 노력을 선보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극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던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에비타>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음악적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였는데, 뮤지컬을 보면서 그 자부심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극답게, 넘버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탱고와 라틴풍의 요소들이 매력적이었다. 전체적으로 팝과 발라드 등의 전형적인 장르와 남미 음악이 만나서 창출해 내는 효과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짱짱하고 환상적인 하모니 역시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에비타’ 역에 김소향 배우, ‘체’ 역에 한지상 배우, ‘후안 페론’ 역에 윤형렬 배우로 구성되었다. 극에서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게도 주인공 에비타 역이다. 전에 김소향 배우가 ‘조시아나’를 연기한 뮤지컬 <웃는 남자>를 감상하였을 때, 2층 끝 좌석이었음에도 천장까지 울리는 듯한 성량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김소향 배우가 표현하는 에비타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품고 관람하게 된 것이다.
김소향 배우의 장점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안정적인 고음, 그리고 밝고 활기차게 무대를 휘젓는 에너지이다. 이것이 종합적으로 에비타의 야망 어린 성격과 잘 부합하여 설득력 있는 에비타를 만들어내었다. <에비타>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인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김소향 배우의 음색이 확연하게 돋보이는 것은 그 이후에 나오는 ‘더 높이, 더 찬란하게 (Rainbow High)’라고 생각한다. 시원하게 뻗는 고음과 압도적인 성량이 더욱 높이 올라가고 싶은 야망을 표현하는 가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다.한 배우의 열연을 보고 나니 김소현 배우, 유리아 배우가 표현하는 에비타는 어떤 색다른 느낌을 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에비타>에는 간혹 플롯의 개연성이나 감정선의 측면에서 완전히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탄탄한 음악과 배우의 실력이 만나서 그러한 단점을 덮어준다는 인상을 받았고, 여기에 더불어 앙상블과의 조화, 난이도 높은 활동적인 안무까지 상당히 볼거리가 풍성한 극이었다.
앞으로도 뮤지컬을 관람하는 나만의 연례행사는 이어질 듯하다. 공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체될 수 없는 전율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와 결합한 이야기가 가진 힘은 가히 강력하여 심장에 와 닿고, 새로운 극을 찾아서 매력적인 넘버들을 감상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계속 뮤지컬을 찾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