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넓고 얕음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오면 “나는 장르 안 가려”라고 대답했다. 어떤 영화를 보고 푹 빠져도 그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시간에 다른 새로운 영화를 찾아야 하니까.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새벽까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디깅하던 날이 많았고, 플레이리스트에는 일본의 보컬로이드부터 미국의 록, 한국의 케이팝, 프랑스의 전자음악까지 뒤섞여 있다. 음악을 랜덤으로 재생했을 때 전 곡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노래가 튀어나오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여러 가지에 조금씩 관심을 두고, 가볍게 오가며 살아가는 쪽이 나답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깊음’에 대한 동경은 버리지를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한 모든 정보와 후기를 줄줄 읊는 사람이 부러웠고, 나도 저 사람이 아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꼭 내가 좋아하는 영역이 아니더라도.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져 왔다.
하지만 나의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좁고 깊음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고, 대신 그들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재미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너는 뭐에 꽂히면 끝까지 파는 사람이야.”
생각해보면 그 말도 틀리지 않다.
한번 마음에 든 노래는, 과거였다면 테이프가 늘어졌을 게 분명할 정도로 돌려 듣는다.
요즘 새롭게 유행이라는, 작화가 예쁘다는 만화나 액션이 파격적이라는 애니메이션에는 좀처럼 호기심이 들지 않는다. 반면 10년도 더 전에 봤던 <케이온!>이나 <하이힐을 신은 소녀> 등의 작품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도 한 시간쯤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수 있다.
아마 나는 ‘넓고 얕음’을 추구하는 ‘좁고 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내가 믿어온 나와, 타인이 오래 바라본 내가 어긋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나는 종종 스스로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려 한다. 넓다거나, 깊다거나.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영역에서는 넓게 흩어지고, 어떤 순간에는 한 점을 오래 파고든다. 그 모순이야말로 나라는 한 사람을 이루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무엇에 머물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