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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차갑던 공기가 따뜻해지거나, 쏟아지던 장대비가 솜 같은 함박눈이 되어 온 세상을 덮을 때 처럼 계절이 변하는 순간엔 문득 일 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아가거나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며 일상들을 보내왔는지 생각하다 보면 이 단조로운 루틴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낯선 풍경과 사람만이 가득한 새로운 세상에서 여행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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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는 슬럼프에 빠진 한국인 각본가이다. 어쩌면 그가 빠진 슬럼프는 일에만 국한돼있는 게 아닌 듯  싶다. 그녀는 내레이션을 통해 ‘고향을 떠난 뒤 계속 여행하는 기분‘ 이라던가 ’어쩌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말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마음을 남겼다. 이 대사는 마치 2018년부터 일본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심은경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실제로 원래 시나리오에선 한국어 내레이션이 없었다 한다. 감독이 촬영 중 심은경이 모국어를 할 때 자유롭다 느끼고 내면을 더욱 잘 나타내기 위해 추가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말하는 ‘여행’이라는 것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뜻하는 것처럼 생각됐다. 자신이 쓴 영화의 GV에서도 영화를 보고 자신이 얼마나 재능이 없는 사람인지 깨달았다는 ’이’는 그 누구보다 일탈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쓴 영화의 주인공처럼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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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쇼’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체험의 영화’라고 정의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오감으로 영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체험의 영화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주인공 ‘이‘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관객이 느꼈으면 한다 했고, 영화에는 그런 그의 희망이 아주 잘 담겨 있다.


여행과 나날에는 여백의 미가 담겨 있다. 정적인 공간, ’이‘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에는 연필 소리만이 가득했고, 그의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화면을 가득 채운 파도와 비가 여름의 향을 안겨주었다.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은 그녀가 설원을 걸어가는 장면인데, 그림 같은 설산이 배경으로 있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고요히 ’이‘가 들어와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주변이 비어있을수록 아름다움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바라보며 작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론 느낄 수 없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이 영화로 더욱 분명해졌다.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1.37:1)이다. 마치 TLR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것 같이 아날로그 한 느낌이 가득해 인위적이지 않은 영상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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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낯선 곳에서 뜻밖의 우연을 접하게 된다. 가령 센 바람에 모자가 날아간다거나, 모든 숙소가 만실이어서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의 여관으로 떠나게 되는 등의 계획되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수상할 만큼 무심한 주인 ‘벤조‘와 만나게 되며 여행은 특별함이 가득한 나날들로 바뀌게 된다. 계획되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자유를 느끼게 된다.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그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해도 결국 인간은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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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주인공 ’이’는 추위를 잊은 미소를 활짝 지으며 말한다. 높게 쌓인 눈에 발을 푹 담가가며 비틀거리지만 묵묵히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인생이라는 긴 꿈을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작은 얼음이 생긴 시냇물의 소리가 들리고, 오래된 여관의 낡은 마룻바닥 소리와 난로 위에서 끓여지는 주전자의 따뜻함이 생각나는 영화 여행과 나날은 지금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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