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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웬디의 존재
'웬디와 루시'의 처음과 마지막 시퀀스에는 나른하고 편안한 허밍이 들린다. 영화를 지탱하는 이 목소리는 마치 주인공 웬디를 향한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 아름다운 음성을 ‘유령의 노래’라 칭하고 싶다. 영화 곳곳에 서려있는 죽음의 이미지와, 영화 속에 묘사되는 웬디의 모습이 다소 범박한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자전거 도둑', '소공녀', '방랑자' 사이, 웬디가 놓인 자리.
'웬디와 루시'는 잃어버린 대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비토리아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젊은 여성이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를 닮았다. ‘생존의 문제’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부가적인 것(으로 보이는)’을 택하는 웬디는 '소공녀'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안토니오는 그를 위해 울어주는 어린 아들 브루노가 있으며, '소공녀'의 미소는 끝끝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켜낸다는 점에서 웬디와 거리를 둔다. 웬디는 그녀를 위해 울어줄 누군가도, 루시와 동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차도 없다.
따라서 웬디는 '방랑자'의 모나와 겹쳐 보인다. 모나와 웬디는 배낭을 메고 길이나 숲에서 잠을 청하며,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운다. 더불어 자신을 조롱하는 타인을 향해 기죽지 않고 소리치는 당당한 인물로, 그와 대비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더욱 처절하고 무력해 보인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모나는 죽고 웬디는 죽지 않았다. '방랑자'는 모나의 죽음을 보여주며 시작하지만, 웬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럼에도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서늘한 분위기는 웬디의 정체를 묻고 싶게 한다.
웬디는 영화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모나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방랑자>처럼, 실은 <웬디와 루시>의 오프닝도 웬디의 죽음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2.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이 현시하는 유령의 존재
오프닝 시퀀스로 돌아가 보자. 숲속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웬디와 루시를 먼 거리에서 담은 롱테이크는 그 자체로 평화롭고 아름답다. 이미지와 호응하는, 나른하고 편안한 허밍은 유려하게 흐르는 카메라에 올라타 웬디와 루시를 따라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성의 출처가 밝혀지는데, 다름 아닌 웬디다.
극 중 인물의 음성이 논-디제시스 음악(*등장인물이 듣지 못 하는 외부에서 삽입된 음악)으로 삽입되면,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웬디의 음성이 웬디와 루시를 응시하는 듯한 쇼트는 자연스레 이야기 바깥의 존재를 위시하는 것이다.
웬디가 유령이 되어 웬디를 보고 있다는 가설은 죽음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선명해진다. 예컨대 열차의 마찰음과 웬디의 얼굴과 만나는 순간, 죽음의 몽타주가 되어 폭발한다. 웬디가 루스를 찾기 위해 숲속에서 잠을 청하던 날, 퇴역군인으로 보이는 또 다른 유랑자와 마주친다.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면 잇따라 열차의 굉음이 프레임을 채운다. 그 순간 웬디는 동공마저 얼어버린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눈을 감지 않는 웬디의 얼굴엔 죽음의 기운이 선연하다. 웬디가 루시를 찾는 도중 들려오는 불명의 소리에 유난히 반응하는 것, 그리고 끝내 출처를 찾지 못하는 것 역시 소리의 진원이 영화의 바깥에 있기 때문 아닐까.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3. 웬디는 왜 유령이 되었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00년대 오리건은 인간이 잉여적 존재로 전락하는 미래 사회의 단면처럼 보인다. 공장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원칙과 절차가 우선시되는 세계에서 포용과 연민은 사치로 여겨진다. ‘모두에게 규칙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마트 점원의 말과 “당신 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지 말해 달라”는 정비소 직원의 말은 이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웬디를 연대하는 공동체의 바깥으로 기어이 밀어낸다. 웬디는 이곳에서 집도, 휴대폰도, 차도, 루시도 없는 ‘잉여’이자 ‘투명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경계 밖으로 내몰린 웬디는 과거의 공간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녀가 알래스카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이유는 단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사실 웬디가 도착하게 될 알래스카의 모습은 이미 재현된 바 있다. 영화의 초반, 웬디는 알래스카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이키라는 인물을 만난다. 이키가 속한 공동체는 문명 이전의 유목민적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영화는 시작부터 웬디의 미래를 암시한 것이다. 웬디의 시선이 이키를 향하면, 역쇼트로 이키와 주변 인물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이들의 얼굴이 웬디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시점이다.
다시 말해 영화의 결말에서 웬디는 과거로 역행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또다시 들려오는 웬디의 허밍이 불길한 이유는 그곳이 이미 잊혀진 과거의 뒤편이기 때문이다. 웬디는 지워진 존재가 되어 과거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루시 없이 떠나는 웬디의 여정을 위무하듯, 유령의 노래가 그녀를 대신하여 흐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