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숨막히는 순간은 언제일까.
숨이 막히는 건 꼭 실질적으로 공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공기가 넘쳐나는 세상 한가운데서조차, 마치 숨이 없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순간이 존재한다. 어쩌면 숨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구병모의 <아가미>는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질식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서사를 마치 물속의 잠긴 빛처럼 투명하지만 아늑한 이미지로 빚어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 생존과 절망, 사랑과 체념 사이의 가장 미세한 경계에서 호흡하려 애쓰는 주인공 ‘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이 책이 그리는 '숨'은 단순한 생리적 작용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내야 했던 새로운 호흡법, 잔인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넣은 그들만의 세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물속에서 살아남는다. 주인공이 가진 특이한 신체인 ‘아가미’는 인물에게 불어넣은 단순한 환상적 장치가 아니라, 이 세상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웠던 한 아이가 선택한 마지막 생존 방식이다. 때로는 너무 미약하고 기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아가미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 깊고 어두운 세계를 견디며 성장한다.
곤에게 새로운 삶을 전해준 이의 이름은 강하이다.
강하의 사전적 의미는 “강과 하천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강하가 떠난 이후 영원히 강의 지하까지 방황하는 곤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단어가 아닐까? 곤은 영원히 강하에 남아 자신의 숨을 찾아 헤맬 것이다.
곤, 당신 이름 있잖아요. 그거 할아버지가 아니고 강하가 지어준 거래요. 그렇게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 글자 뿐인 이름을,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에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여기서 “아가미”는 상징이 된다. 누군가는 숨을 위해 폐를 갖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버티기 위해 ‘다른 것’을 갖는다는 사실의 상징. 소설을 읽다 보면 놀랍도록 고요하게 잠식된 세계에서 수면위로 물장구를 일으키는 그들의 발버둥,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심해의 압력처럼 묵직하다. 선명한 감정들과 강렬한 자극적 흐름들과 달리, 이 이야기는 마치 바닷물 속 미세한 흐름처럼 아주 천천히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인물을 끌고 간다. 주인공은 때로 스스로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또 때로는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 애쓴다. 그 모든 움직임이 간절하고 잔인하며, 아름답다.
<아가미>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작가가 주인공을 ‘특별한 존재’나 ‘운명적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른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상처의 형태로 존재한다. 많은 시선과 배척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며 이 모순이 이 소설의 영혼을 만든다. 이 작품을 읽으며 떠오른 문장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을 바꿔가며 살아간다.” 어쩌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가미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독이 아가미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감정은 단순히 슬프거나 아름답다는 말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헤맨 뒤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의 그 묘한 현기증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희망을 억지로 주지 않고, 절망 속에 가두지도 않는다. 대신 고독과 성장의 경계를 따라 천천히 밀려오는 물결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인물들이 적응하고, 마침내 자신의 호흡을 찾아가는 과정은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놀랄 만큼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세상의 방식으로 숨 쉬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각자가 만들어낸 호흡이야말로 삶을 버티게 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숨막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