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퇴근 후의 시간은 단순히 일이 끝난 이후의 여백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 동안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느라 지친 나 자신을 다시 개인으로 회복시키는 의식의 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일상은 점점 더 업무와 개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 알림이 울리고, SNS에서는 생산적인 저녁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이 흐른다. 이처럼 쉼의 시간조차 효율과 자기 계발의 틀 안에 포섭된 사회에서, 문화생활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자기 치유의 방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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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만의 의식으로서의 문화생활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의 효율보다 나의 감정에 집중하는 행위는 현대인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심리적 장치이자, 정체성의 근간을 되찾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와 향초를 켜고 음악을 듣는 짧은 순간을 통해 하루의 피로를 흘려보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책을 펼치거나 심야 전시를 보며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다. 이 반복적인 행위는 일종의 의식처럼 나를 중심으로 하루를 다시 정렬하는 과정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퇴근 후 요가 스튜디오에 간다. 처음엔 운동을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요가 자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요가는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환기시키는 과정이다.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을 상대하고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가, 호흡을 맞추고 동작을 반복하는 순간만큼은 오직 자신의 몸과 리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요가는 내가 나에게 돌아가는 시간인 것 같다.” 이 짧은 문장에는 문화생활이 지닌 본질이 응축되어 있다. 문화는 거창한 예술 소비가 아니라 자신에게 다시 연결되는 경험, 즉, 세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내면의 속도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다.


또 다른 친구는 퇴근 후 작은 자취방에서 헤드폰 앰프를 꽂고 매일 기타를 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화가 나면 거칠게 기타줄을 튕기고, 우울한 날에는 잔잔한 멜로디를 조용히 연주한다. 때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따라서 자신만의 멜로디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음악은 취미일 뿐이지만, 그에게 음악은 감정을 통과시키는 통로이다. 말로 풀지 못한 감정이 소리로 흘러나올 때, 그는 비로소 하루를 내려놓을 수 있다.

 

그의 문화생활은 예술가의 창작이라기보다, 하루를 정리하는 사적인 의식이자 스스로를 치유하는 언어이다. 요가가 몸의 리듬을 회복하는 의식이라면, 그의 음악은 마음의 리듬을 회복하는 의식이다.

 

나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다. 퇴근 후 깨끗하게 씻은 다음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는 일이다. 어떤 날은 하루를 일기로 정리하고, 또 어떤 날은 짧은 리뷰나 인용구를 기록한다. 때때로 작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노트를 채워갈 때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오롯이 나의 언어로 사유하게 된다.

 

이 시간은 성과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한 행위다. 사회 속 역할이 아닌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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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퇴근 후의 문화생활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삶은 되돌리는 의식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의식을 지닌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리듬으로 만들어낸다. 문화생활은 그래서 소비가 아닌 회복이며,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데 있다."

 

이처럼 하루의 끝에서 우리가 문화생활이라는 의식을 반복하는 이유는,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도 오늘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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