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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는 태어나기 위해 열 달을 기다린다. 그렇게 세상에 나 탯줄을 자르고 첫울음을 내지르면, 그 순간부터는 죽음을 기다린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수많은 것들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기차, 친구, 물건, 연락 등 그 종류는 너무나 다양해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이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탈 숫자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고, 친구와 약속을 잡은 사람은 지금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어떻게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기다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그렇게 한다. 그들은 ‘고도’라는 존재를 계속 기다리지만, 그게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자신들이 그를 왜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포조 (단호하게) 고도는 누구요?

에스트라공 고도라뇨?

포조 날 고도로 잘못 보지 않았소?

블라디미르 천만에요. 선생님,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일 없습니다.

포조 그게 누구냐니까?

블라디미르 그건…… 저…… 그냥 아는 사람이죠.

에스트라공 알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블라디미르 그러믄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에스트라공 저 같으면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요.

 

 

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들은 언젠가는 그들에게로 온다.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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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리베라 감독의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즈비그니에프 자마쇼프스키)과 블라디미르(보이치에흐 말라이카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2년에 출간된 이후로 선풍적인 인기와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바로 다음 해인 1953년 1월에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초연을 올렸고, 1969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런 명성에 비해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작품 전반을 통틀어 등장하는 인물은 단 다섯. 그중 셋은 등장했다 퇴장했다 해 정석적인 등장인물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둘뿐이고, 배경은 앙상한 나무가 세워진 고정된 풍경 하나가 전부다. 인물들은 침묵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섯 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단번에 쏟아내기도 하고, 웃다가 불쑥 화를 내기도, 잘 있다가도 문득 죽고 싶다며 목을 매기도 한다.

 

 

에스트라공 가까이 가 보자. (블라디미르를 끌고 나무 가까이로 간다. 나무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 목이나 맬까?

블라디미르 무얼로?

에스트라공 너 끈오라기라도 없냐?

블라디미르 없다.

에스트라공 그럼 할 수 없군.

블라디미르 가자.

에스트라공 잠깐만. 내 허리띠가 있다.

블라디미르 그건 너무 짧다.

에스트라공 네가 내 다리를 잡아당겨 주면 되잖아.

블라디미르 그럼 내 다리는 누가 잡아당겨 주게?

에스트라공 참 그렇구나.

 

 

이 얼마나 무질서하고 비논리적인, 말도 안 되는 전개란 말인가.

 

맞다. 그래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 장르의 작품이다. 부조리극은 1960년대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연극 운동이자 사조로, 당대 사람들이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느낀 현실 세계와 인간 존재의 무질서함을 예술로 표현해낸 것이다. 여기에는 극의 부조리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극이면서도 반(反)연극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현실적이지 않은 시공간, 비논리적으로 행동하는 등장인물, 일반적인 플롯의 해체 등이 그것이다. 즉 만일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한 부조리극 작품을 읽고 혼란을 느꼈다면, 그건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도’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작품이 만들어진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알고 있기도 하다. ‘고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정해진 바가 없기에(초연 이후 ‘고도’의 존재와 의미를 묻자 바케트는 “만일 그걸 알았다면 내가 이미 작품 속에서 말했을 거요.”라고 답했다)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 말인즉 그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존재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이 무언가는 보통 신이나 자유, 희망 같은 긍정의 상징 혹은 죽음, 절망 같은 부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생각은 각자의 자유지만, 나는 가여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위해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야 ‘고도’는 그들에게 오지 않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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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프랑송 감독의 <고도를 기다리며>

 

 

‘그래서 고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내게도 책을 읽고 혼란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서 유일하고 분명하게 남은 한 가지였다. 신일까? 희망일까? 혹은 오지 않는 게 좋을 그런 반전적인 존재일까? 그 답은 영원히 알 길이 없겠지만, 책을 읽고 ‘고도’라는 존재를 알고 나니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 나에게도 결국 ‘나만의 고도’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과연 몇 명의 ‘고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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