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간다. 모든 게 일시정지된 것 같았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고 사람들은 원래대로 분주해진다. 월요일이 되면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다함께 줄을 맞추어 길을 건너고, 건물에 들어가 오늘의 할 일을 살펴보고, 타닥거리는 타자 소리와 함께 업무에 대한 고민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무념무상, 단조로운 일상에 별 다른 생각 없이 무료함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일단 기지개를 한 번 쭉 피고, 두 손가락을 브이 형태로 들어올려 보자. 그리고 소리내어 말해본다. "과거의 나는 안녕이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행태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실 나의 오래된 무력함과 무료함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생기가 넘치던 꿈 많은 10대 시절 나는 고민이 많았다. 평생을 압박과 강요 속에서 특정한 미래, 특정한 나의 모습을 '세뇌'당하며 커왔지만 사춘기와 새로운 학교로의 진학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원하던 것을 찾았다. 따라서 나는 거센 반항아가 되었다. 그 반항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었고, 그 씁쓸함을 맛 본 나는 어느 샌가 포기하는 게 익숙해졌다. 반은 나의 무기력이, 그리고 반은 반강요가 빚어낸 나의 현실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닥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전공을 공부하면서 이걸 배우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고, 아무리 공부해도 그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답답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업무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이 항상 들어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 속에서 배울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었고 현실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재미가 없었을 뿐이다! 일상이 무료하고 삶이 재미가 없었다. 무언가 보람을 느껴야하는데,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아득바득 공부하고 배우려고 하는 지금 이 현실이 내가 이 직무에서 더 성장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불안하고 우울한 고민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회피성 자해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이 '안정되고 무료한' 상황을 평생 견딜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아주 잘 따르는 친척 어른을 뵈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내게 문득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의 적성은 어떤 것 같니?" 나는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말씀 드렸다. 원래 내가 추구하는 적성은 글을 깊게 이해하고 그걸 토대로 무언가를 분석하는 일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속성의 직무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나마 지금 하는 업무는 이 직무에서도 내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 해당 내용도 덧붙였다. 친척 어른은 내게 웃어주시며 너의 적성을 살릴 일에 대해서 고민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원래도 고민이 많았던 주제였는데, 이 고민이 나한테만 보이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생각에 빠졌다. 사실 이 직무에 대한 조심스럽지만 너무 의외라는 반응은 나와 이야기를 해본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보인 반응이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게 틀린 걸까? 분명 취준을 할 때는 제발 붙길 바랬던 회사, 제발 하길 바랬던 직무였는데 그건 단지 '취업 준비' 라는 불안한 상황 속에 있어서 힘들어서 났던 생각들이었을까? 내가 뭘 해야하는 걸까?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겪는 업무에 대한 회의감인걸까? 도대체 이 불안감은 언제 사라지는 걸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문득 10년 전의 내가 생각났다. 한창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나. 물론 그 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내 적성과 나 자신을 모른 상태로 주변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땐 내가 내 진로를 직접 찾아서 고민해봤던 게 기억이 났다.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를 검색하면서 사람을 돕는 게 내가 너무 행복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하는 일은 그 어렸던 10년 전의 나조차도 깨우쳤던 나의 적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감이 드는 게 아닐까? 지금의 난 10년 전보다도 더 겁쟁이가 되어버렸는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진 않았다.
그럼 난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평생을 이렇게 산다면 너무 후회할 것 같은데, 해봐도 되지 않을까?
세상의 많은 일들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곤 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수 년 간 방황하며 불안하고 동요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예술을 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던 고등학생 시절의 열정적인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 노래가 생각났다.
Jake Bugg의 Two Fingers 라는 음악이다. 기억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잊기 위해 담배를 핀다는 재미있는 이 청년은 무언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며 후렴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So I kiss goodbye to every little ounce of pain
그래서 나는 모든 작은 단위의 고통에게 작별 인사를 고해
Light a cigarette and wish the world away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이 세상이 사라지길 바래
I got out, I got out, I'm alive but I'm here to stay
나는 벗어났어, 벗어나서 살아있지만 여기에서 머물고 있어
So I hold two fingers up to yesterday
그래서 나는 과거를 향해 두 손가락을 들어올려
(*two fingers는 영국에서 욕을 의미하며,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의미와 같다.)
Light a cigarette and smoke it all away
담배에 불을 붙이고 모든 것을 날려보내
I got out, I got out, I'm alive but I'm here to stay
나는 벗어났어, 벗어나서 살아있지만 여기서 머물고 있다고
갑작스럽게 이 노래가 생각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래를 18살 때 처음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예술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비슷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걸까. 과거의 먼 길을 돌아, 내 많은 고통을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다시끔 돌아왔기 때문인걸까. 어렵고 힘든 길인 걸 알지만 그것에 대한 고통에도 두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싶은 강한 의지가 발생했기 떄문인걸까.
긴 연휴가 끝나간다. 멈췄던 시간도, 사람도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내 하루하루도 흘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된다. 나도 다시 길을 걸어야 함을 알지만 잠깐 멈춰서 두 손가락을 들어올려본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옆길로 가기 시작한다. 두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