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나는 학업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전공인 국문학은 더 이상 내게 어떤 의미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구비문학 수업에서 한 이야기를 만났다. 고대 수메르어 단어 'ti'가 '생명'과 '갈비뼈'라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지닌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성경의 창세기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생명인 이브를 창조했다는 기록은, 수메르 신화 속 갈비뼈의 여신 닌티가 엔키 신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이야기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갈비뼈의 형태적 유사성 때문에 '활'이라는 의미도 파생되었고, 이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약속의 징표로 내건 '무지개'가 영어로 '활(bow)'과 동일한 단어를 쓴다는 사실로 이어졌다. 나는 언어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화와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압도당했다. 낯선 언어 속에서 고대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은 내게 무한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 깨달음 덕분에 흔들리던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던 셈이다.
다와다 요코의 에세이집 <영혼 없는 작가>를 읽는 내내, 나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모국어인 일본어와 또 다른 언어인 독일어 사이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언어를 낯설게 바라보며 나의 길을 찾았던 지난날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이 책은 한 작가가 언어와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기록이자, 동시에 언어의 본질에 매료되었던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특별한 다리가 되어주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한 언어를 새롭게 인식하기
그렇다면 다와다 요코의 이러한 언어적 실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로 언어를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그녀의 시도는 사실 20세기 초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제시한 '낯설게 하기' 개념과 깊이 맞닿아 있다.
형식주의는 문학 작품을 작가의 개인사나 사회적 배경에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언어 구조물로 간주한다. 이 접근법의 핵심은 작품의 '문학성(literariness)'을 탐구하는 데 있으며, 내용(content)보다는 형식(form)과 언어적 기법에 주목한다.
구조주의는 형식주의의 이러한 개념을 한층 확장하여, 개별 문학 작품을 넘어 모든 문학 작품과 문화 현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구조'나 '시스템'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는 개별 작품을 하나의 고립된 텍스트가 아니라 더 큰 의미 체계 속의 한 부분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두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낯설게 하기’다. '낯설게 하기'는 예술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혁신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술은 익숙하고 자동화된 대상을 낯설고 생경하게 만들어 독자가 그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예술의 목적은 현실을 단순히 그대로 재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는 데 있다. 예술은 우리의 지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조적 행위인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 이론의 탁월한 실례를 보여준다. 특히 걸리버가 거인국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이다. 거인의 시선으로 인간 사회와 신체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주체-객체의 전복이 일어난다. 걸리버가 속한 인간 사회와 그 규범들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거인의 관점에서는 비논리적이고 기형적으로 보이는 대상이 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세계에 대해 인지적 거리를 갖도록 강제하며, 기존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킨다.
이러한 인지적 왜곡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관습과 규범이 절대적 진리가 아닌 상대적이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철학적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 '낯설게 하기'의 의미가 단순한 문학적 기법을 넘어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각의 탈자동화를 통해 반복과 관습에 갇힌 우리의 인식을 해방시키는 행위이다. 예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수동적인 거울이 아니라, 감각적 새로움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지각 행위임을 강조한다.
<영혼 없는 작가>는 이러한 형식주의의 이론적 성찰이 현대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와다 요코가 모국어(일본어)가 아닌 외국어(독일어)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낯설게 하기'의 연속적인 실천이다. 이는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 창작의 근본적인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익숙하고 자동화된 모국어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작가는 언어를 낯설고 새로운 대상으로 재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투명한 전달 매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탐구의 대상이 되며, 새로운 의미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오가는 작가의 글쓰기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 분석 기준을 마련하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텍스트를 단순한 메시지 전달의 수단이 아닌 형식과 구조의 복합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품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비교 분석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녀에게 '영혼 없는 작가'의 상태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적 자유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고정된 문화적 정체성과 언어적 관습에서 벗어날 때, 작가는 언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유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경계인, 그리고 제 3의 공간
다만, 앞서 살펴본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관점만으로는 다와다 요코의 작업이 갖는 현대적 의의를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그녀의 글쓰기는 단순히 언어적 기법의 실험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모국어도 외국어도 아닌 애매한 경계 지대에서 창작 활동을 펼치는 그녀의 상황은 전통적인 문학 이론의 틀로는 설명하기 힘든 새로운 현상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 간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의 특별한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내는 혼종적 공간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 사이에서 두 언어를 중재하는 위치에 서 있으며,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경계인 역할의 현대적 의미는 단순한 문화적 혼재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존의 고정된 문화적 이분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적극적 실천이다. 글로벌화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는 다문화적 소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포스트콜로니얼 이론가 호미 바바(Homi K. Bhabha)가 제시한 '제3의 공간(Third Space)' 개념과 맞닿아 있다.
바바의 제3의 공간 이론은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하고 중첩되는 간극적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혼종성의 장소를 말한다. 이 공간은 기존의 문화적 경계를 해체하고 "새롭고 인식할 수 없는 무엇"을 창조하는 저항의 공간이자 협상의 공간이다. <영혼 없는 작가> 자체가 바바가 말하는 제3의 공간을 구현한다. 이 에세이는 동서양의 사유방식을 넘나드는 혼종적 텍스트로서, 독자에게도 기존의 언어관과 정체성관을 재협상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와다 요코의 작업은 이러한 이론적 통찰을 문학적 실천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영혼 없는' 상태는 결핍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조건인 것이다.
다시, 언어의 신비로움 앞에서
글을 마무리하며, 구비문학 수업에서 배운 이야기를 떠올린다. 고대 언어와 신화 속에서 발견한 의미의 연결고리는 단순한 학문적 지식을 넘어 내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익숙한 개념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순간, 나는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놀라움을 느꼈고, 사유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다와다 요코의 글쓰기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벗어나 다른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며, 언어가 지니는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체험한다. 익숙한 표현이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언어와 사유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새롭게 구성하고 탐색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이 경험은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모국어나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 속에서도, 잠시 멈춰 표현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면 기존의 틀과 습관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해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순간,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연결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체험은 특정 언어나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다시 탐색할 기회를 발견할 수 있으며, 작은 단어와 표현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와 통찰을 마주할 수 있다. 다와다 요코의 글은 그런 발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예일 뿐, 우리 각자에게도 언어의 신비를 경험하게 해주는 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