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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났을 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둘 중 어느 쪽으로 떨어진 것인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내 기억은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내 기억이 아니면, 나라는 존재는 누가 증명해 줄 수 있을까?

 

나는 꿈을 사는 걸까 현실을 사는 걸까?

 

 


1. 


 

<매트릭스>를 봤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모두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진짜 세계에서 인간은 머리 뒤 호스로 주입된 프로그램을 꿈꾸는 하나의 부품이라는 시나리오. 늘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 작품은 눈앞에 놓인 내 손조차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만약 시뮬레이션 우주론(현실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이론)이 진짜라면, 우리가 아등바등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이 세계 전체가 부정당한다. 실은 미래의 사람 또는 기계가 설정해 놓은 프로그램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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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진실을 보는 ‘빨간 약’과 편안한 거짓 속에 머무는 ‘파란 약’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게 될까?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우리에게, 대체로 현실은 잔인한 반면 꿈은 훨씬 달콤하고 안락하다. 그 꿈속에 머물 수 있다면, 영영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행복한 인생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생이 만약 프로그램 속이라고 해도, 아직 아무도 나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시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다. 만약 나가는 길이 너무나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면, 평생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자아실현을 하면서 사는 것도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2. 


 

영화는 꿈꾸는 것 같은 상태를 만들어준다. 영화관을 가면 더 그렇다. 다시 말하면 영화를 자주 보는 나는, 남들보다 더 자주 꿈꾸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나는 항상 음악을 귀에 달고 산다. 이동 시간에는 음악을 감상하고 싶어서 영상도 보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음악에 몰입할 때면 영화처럼 현실에서 한 발짝 멀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살다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꿈에 대한 기억이 먼저 날 때도 있지만, 어렴풋한 감정만 느껴질 때도 있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찝찝하거나, 아니면 행복한 기분. 그 상태로 하루를 준비하다 보면 뒤늦게 그날의 꿈이 기억난다. 그러면 모든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다. 아, 이래서 오늘 일어났을 때 기분이 그랬구나.


과거에 있었던 일이 꿈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안 좋은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오래된 기억은 잠에서 깬 후 기억나는 꿈의 내용과 비슷한 해상도로 떠오른다. 그렇다 보니, 옛날 기억일수록 그것이 꿈에서 본 것인지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에게 묻는다. 그때 그런 일이 진짜로 있었어? 아니면 내가 꿈에서 본 거야?

 

 

 

3.


 

어제는 <퍼펙트 블루>를 봤다. 아이돌 그룹 출신의 미마가 배우로 전향하면서 겪는 내면의 혼란을 치밀하게 나타낸 영화였다.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점은 자아 혼란을 겪던 미마가, 급기야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중반부 이후의 연출이었다. 분명히 누군가를 본 것 같은데 다시 쳐다보면 없고, 현실인 것 같았는데 전화 소리에 눈을 뜨면 꿈에서 깨는 식이다.


곤 사토시 감독은 여기에 미마가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설정을 활용해, 관객 역시 꿈과 현실을 혼동하게 만든다. 후반부로 가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도 이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상상이며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리게 된다. 꿈꾸러 간 영화관에서, 꿈속의 꿈과 실제를 구분하려다가 한층 더 복잡해진 나는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내가 그녀의 꿈을 꾸는 것처럼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집에 가는 길에는 사뿐사뿐 쫓아오던 아이돌 미마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까 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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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내 모습과 주변에서 기대하는 내 모습. 현실적인 선택과 마음속 이상의 괴리가 커지면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자아가 흔들리면 세상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꿈과 현실의 차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이상적인 꿈과, 여러 조건에 떠밀려 선택한 현실의 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면서 꾸는 꿈과 맨정신일 때의 현실이다. 두 가지 종류의 꿈은,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것처럼 유사한 속성을 갖는다. 언제나 동경하는 것, 그러나 손에 잡히지는 않는 것. 누군가 꿈속에서만 산다면 남들은 정신병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맨정신으로만 사는 것도 미치기 딱 좋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사는 것.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4?


 

최선이었다고 믿었던 결정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 더 나아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옳지 않게 될 때는 내가 믿던 현실이 뒤집힌다. 그런 그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꿈?


분명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현실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러나 나는 늘 하루와 인생 전체를 연결 짓는 과정에서 혼란이 온다. 분명 오늘 하루는 현실 같은데, 지난 기억과 앞으로 올 미래는 꿈같다. 현실의 해상도는 점점 흐릿해지고, 꿈의 색감은 때로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이 모든 기억이 내가 정말 겪은 것이 맞는지, 인생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남은 80년이란 어마어마한 시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내가 유일하게 믿는 문장이 있다면,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은 곧 무한한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1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째서 동일인이란 걸 안다고 생각해?

 

단지 기억의 연속성. 그것만에 기대어 우리들은 일관된 자기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

 

- 퍼펙트 블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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