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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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 가는 날. 지루한 얼굴로 차에 탑승한 열두 살 소희는 멍하니 창밖 풍경을 응시한다. 따발총처럼 잔소리를 해대는 아빠의 말을 반쯤 무시하며 짜증을 삭힌다. 한편, 능숙한 손놀림으로 구두를 수선하는 홍의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햇빛 한 줄기 용납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녀는 스탠드 조명의 은은한 불빛에만 의지한 채, 강렬한 음악을 들으며 가위질을 한다. 택배 박스를 밖으로 내놓기 위해 현관문을 연 그녀에게로 가쁜 숨을 내쉬며 소희가 달려온다. 밝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홍의 집에 살구 색 티셔츠를 입은 열두 살 소녀가 마음대로 들어오며 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2019년 속초 국제 장애인 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영화 <홍혜일기>는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전직 댄서 홍과 한 부모 가정에서 성장 중인 소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일하며 은둔을 택한 홍과 성인이 되기까지 한참이나 남은, 아직은 어린 소희. 이외에도 여성과 소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도 구분되는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때문에 얼핏 보면 연대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가익 감독은 습자지에 물이 스며드는 방식을 택하여 홍과 소희가 서서히 각자의 마음 속 구멍을 메워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대감 형성의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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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과 소희는 각각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 걸까? 먼저 소희에게는 어머니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윽박지르거나 자기 말만 할 뿐 소희에게 큰 관심이 없다. 더군다나 아직 초등학생인지라 학교에서는 보호자의 참석을 요구하는 자리가 자주 마련된다. 부모님과 아이로 이뤄진 소위 ‘정상 가족’이 대다수를 이루는 교실에서 소희는 선뜻 어머니의 죽음을 말할 수 없기에 그녀는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국에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만다. ‘불쌍한 아이’라는 낙인보다 차라리 거짓말쟁이가 되는 편이 정상 범주 안에서 위태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춤을 사랑해서 댄서가 된 홍은 사고로 더 이상 춤을 출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된다. 춤의 세계를 강제적으로 떠나게 된 홍이 선택한 것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이다. 구두는 홍이 댄서로서 무대에 설 때마다 그녀와 딱 붙어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이제 그녀에게 구두란 다른 이의 요구에 맞춰 고치는 사물로 변하게 된다. 다양한 몸짓으로 춤을 추던 그녀에게 같은 자세로 몇 시간을 유지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춤을 출 수 없게 된 홍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끔 상체만을 움직이며 음악에 기대 춤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홀로 사라진 춤의 자리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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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 시절 홍의 사진을 훔친 소희가 얼떨결에 같은 반 친구와 담임선생님에게 홍을 자신의 엄마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예회가 다가오자 담임선생님은 소희에게 어머니의 참석을 권유한다. 무심코 내뱉은 거짓말로 곤경에 처한 소희는 어쩔 수 없이 홍에게 엄마 대행을 부탁하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둘은 단순한 이웃과 이웃, 여성과 소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홍은 소희의 부탁을 거절한다. 모르는 아이의 엄마 행세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장애를 가진 채 집 밖을 나서기 힘든 것이다. 거절에 상심할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 홍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도 했던 터라 소희는 그녀에게 아주 천천히 다가가기로 한다. 소희는 상대를 신경 쓰며 다가갈 줄 아는 아이이므로.

 

매번 휠체어에 앉아 상체를 숙이고 택배 박스를 내려놔야 하는 홍의 불편함을 목격한 소희는 현관문 옆에 높이가 적당한 탁자를 놓는다. ‘택배 여기 두세요’ 서툴지만 바른 글씨로 쓰인 소희의 문장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순하다. 이 단순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소희가 자신의 배려를 통해 홍으로부터 어떠한 보상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인간적인 배려를 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한 홍도 전보다 수월하게 택배 박스를 놓으며 경계심을 풀게 된다.

 

이제 소희는 구두를 보면 홍을 떠올린다. 구두를 수선하는 홍과 현란한 몸짓으로 춤추는 홍을. 소희에게 홍은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자 몸을 잘 쓰는 댄서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빠 몰래 쿠키 상자에 모아둔 돈으로 구두 한 켤레를 사서 홍에게 선물하는 소희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다. 핑크색 구두는 홍의 발에 꼭 맞지만 홍은 그걸 신고 춤을 출 수 없다. 대신 그녀는 구두를 손으로 꽉 잡는다. 그리고 늘 자신의 집 안을 채우는, 아름답고 격정적인 춤선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에 맞춰 손을 발이라 생각하며 춤을 춘다. 소희의 자그마한 선물 덕에 자기만의 춤을 찾은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홍은 어두운 집 안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학예회 당일, 홍은 등교하려던 소희 앞에 나타난다. 화려한 귀걸이, 진한 화장, 화사한 옷, 그리고 소희가 선물한 핑크색 구두를 온 몸에 휘감은 채로. 소희가 액자를 통해서 보았던 댄서 시절 홍의 모습으로. 그늘이 한 꺼풀 벗겨진 홍의 얼굴에는 미소가 자리한다. 그런 홍을 바라보는 소희의 얼굴에도 밝은 햇살이 깃들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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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을 치고 고립을 택한 홍이 소희에게 마음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라는 소희의 정체성이 순진함과 안전함을 보장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소희는 홍의 장애에 함부로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한 부모 가정에서 성장 중인 소희에게 동정 어린 시선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 테고, 때문에 연민이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비참함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는 홍이 소희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홍이 소희에게 소량의 연민이라도 느꼈다면 학예회 날 어머니로 참석해 달라던 소희의 부탁을 한 번에 승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소희를 바라볼 때 별다른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소희의 부탁을 확실히 거절함으로써 일말의 동정도 내보이지 않는다. 즉, 홍과 소희는 서로를 가련하게 보지 않았기에 천천히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짧은 러닝타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홍과 소희가 서로를 내려다보지도, 올려다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두 사람이 동일한 눈높이에서 동일한 인격체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음을 내포한다. 차이를 갖고도 수평선에서 마음의 문을 열었기에 홍과 소희는 각자의 빈 부분을 메우는 수행, 즉 보살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캐럴 길리건의 말을 빌리자면 "보살핌은 존중을 바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보고 듣고 반응하는 것이다." 상호의존을 전제로 하는 이 보살핌을 실천했기에 홍과 소희는 두 사람만의 느슨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앞으로 홍은 소희를 통해 과거를 고통으로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고, 소희는 홍의 용기 덕에 무작정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갈라서게 만드는가. 성별, 세대, 장애의 유무 등에서 비롯된 차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선을 쉽게 끊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우리는 홍과 소희를 통해 정체성이 이분법으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며 차이가 존재해도 함께 손을 잡고 다음을 도모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이는 그저 차이일 뿐 사람의 마음을 얼어붙게 할 수도, 인간관계를 단절시킬 수도 없다. ‘너’와 ‘나’로 존재하되 언제든 합체될 수 있다는 희망. 홍과 소희는 그 희망을 체득하여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 중에서 소희는 영어 교과서에 쓰여있는 문장 하나를 반복적으로 읽는다. “Nice to meet you.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방에 틀어박혀 홀로 이 문장을 읽는 소희의 낯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 문장을 고립된 공간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슬프게 낭독하지 않으리라. 오히려 소희는 안온한 얼굴로 홍에게 묻고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홍도 그럴 것이다. 안부를 주고받으며 느슨하게 이어질 홍과 소희 사이의 끈은 팽팽하지 않기에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끈에는 이미 행복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참고문헌

캐럴 길리건, 『담대한 목소리』, 김문주 옮김, 생각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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