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졸업까지 서둘렀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학교에는 아직 내 친구들이 남아있다. 영영 못 볼 사이도, 거리도 아니지만, 생각만 하면 그리워지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종종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걷는, 확실한 신분의 그 친구들을 만나면 가벼운 듯 무거운 질문이 훅 들어온다.

 

 

IMG_2950.JPG

▲생각이 나서 2022 ⓒ김유미

 

 

‘요즘 뭐 하고 지내?’

 

흔하디흔한 안부지만, 심호흡을 하면서 할 말을 고른다. 면접 같다고 느껴지는 날이 잦아지면, 말을 정리해 나가야만 할 것 같다. 분명 친하고, 편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도 말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아무래도 ‘생각’이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나름대로 정해져 있으니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이가’, 그에 맞춰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한다. 동기부여 없이는 못 사는 인간인지라 이렇게 ‘Why – How – What’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방식에 불만은 없지만, 덕분에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 앞에 설명이 길어진다.

 

 

어른 용기_평면 표지.jpg

 

 

그래서 안부 대신으로 이 책을 건네고 싶다.

 

김유미 작가의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는 깊고도 정돈된 다정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보더라도 비슷한 감상일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도달하기는 어려운 사유들이다. 괜히 판다를 보면 나를 떠올리는 친구에게는 그 자체로 웃음이 될 만한 책이다.

 

 

그러나 자유로움에는 두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 우리는 누구나 불안해. 남들도 그렇다는 것. 그 말인즉슨 내가 그리 유별나지 않다는 것이다.

 

p.95-96

  

 

누구나 할 법한 말이지만, 어떤 말은 유독 힘 있게 오래 남는다. 누구나 건넬 수 있는 위로 같지만, 어떤 위로 앞에서는 흐물흐물 눈물이 난다. 말의 연료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김유미 작가는 10년째 퇴근 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업을 꿈꾸면서도 물감 살 돈을 위해 퇴사를 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훌륭한 격려가 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삶을 조율하는 사람의 위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꿈과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을 동병상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빈도가 늘어감을 체감하는 일이다. 모든 어른을 탓할 마음이 없으니 일단 그럴 용기가 없는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선택 앞에는 불안이 한 쌍으로 따라온다.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어른이라서 용기가 필요하다. 손에 쥔 게 너무 많아서 결국은 하고 싶은 것을 담을 자리가 없다. 안 쓰는 반찬통을 버릴 용기가 없는 어른은 되려 용기보다 용기(容器)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힘을 빼야 한다고 말한다. 손목에 힘을 풀어야 자연스러운 선이 그려지는 것처럼 나를 믿고 힘을 뺀 삶이야말로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나답다.

 

 

 

판다에 대한 여담


 

판다를 닮아서 붙여진 별명이 있다. 한때는 이 별명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근데 이제부터는 마음껏 판다를 좋아해도 될 것 같다.

 

판다는 독립적인 동물이다. 대나무를 오래오래 꼭꼭 씹어 먹고, 느릿하게 산책하길 좋아한다. 나무 위로 올라가 한참 낮잠을 자면, 처음인 마냥 다시 대나무를 씹는다. 언젠가 영상에서 엄마 판다, 아빠 판다, 아기 판다가 각자 우리에서 생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진정으로 고독을 즐길 줄 안다.

 

 

IMG_2952.JPG

▲농담 2023 ⓒ김유미

 

 

친구는 나의 외관에서 판다를 찾았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는 내면이 더 많이 닮았다. 판다적 사고라는 말을 하고 다니면 몇이나 이 농담을 이해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묵묵하기로 소문난 판다도 수틀리면 앞구르기로 의사 표현을 한다.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앞구르기라니.

 

p.102

 

 

누군가 안부를 묻거든 앞구르기 중이라고 대답해야겠다.

 

 

백승원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저장증을 고치기 위해서 날을 정해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