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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집에서 멀지 않은 회사에 인턴으로 합격했다. 두 번째 회사 생활이라서 아직도 낯설기만 한데, 생각보다 입사 직후부터 업무가 많이 들어와 정신이 없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량은 많게만 느껴졌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그 역량을 대놓고 강제하지 않는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성과를 크게 내야 할 것만 같았고, 상사가 말하는 것을 단번에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모르는 것도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직감 때문에 입사 첫 주 내내 퇴근 후에도 집에서 컴퓨터를 켜 새벽 두 시까지 매뉴얼들을 보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 주에 진행하게 될 저 업무들을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미리 겁을 먹는 게 며칠 내내 누적되니 피로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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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 책을 펼쳤다. 도서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용기를 알려준다. 이 용기의 중심에 판다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만의 삶을 즐기며 독립적으로 사는 판다는 대나무를 오래오래 꼭꼭 씹어 먹고 느릿느릿 산책하며 풀밭을 구른다. 게다가 어쩐지 늘 무던해 보이기도 한다.

 
 
엉망이어도 괜찮아, 난 귀여우니까


 
세상에 심각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기후위기, 전쟁, 질병처럼 중대한 문제도 아닌데 7시에 못 일어났다고 ‘실패’라니. 더 웃긴 건, 그걸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내 자신이었다. 누가 내 인생에 ‘불합격’ 도장이라도 찍은마냥 양치하다 말고 좌절하는 내가, 세상 하찮고 귀여웠다.
 
- P. 70 <엉망이어도 괜찮아, 난 귀여우니까>
 
 
나는 아직도 가끔 자기 전에 몇 년씩이나 지난 옛 실수가 떠오르곤 한다. ‘그때 왜 그랬지…’라고 생각하다 보면 더 이전에 있었던 다른 실수까지 덩달아 생각나 버린다.

앞으로 내가 인턴 생활을 하며 하게 될 실수도 꽤 많을 것 같다. 물론 직장에서의 실수이기에 모든 실수가 다 ‘사소한 것’이라고 나 혼자 치부해 버릴 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왜 이럴까?’라는, 나 자신의 전체를 내리깎듯 생각하는 나에게 이 부분이 주는 메시지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꽃밭에서 ‘무념무상’으로 뒹굴기만 하는 판다들을 생각하며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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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시작은 없어, 그냥 하는 거야


머릿속에서 미리 완벽한 계획을 다 세우고, 준비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나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긴 한데, 가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획한 채로 시작하려고 하면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엄두가 나지 않고 몸과 마음만 지쳐 결국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편집과 관련된 툴을 배우려고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샀다. “꼭 이 책을 마스터해서 편집의 신이 되어야지!”하는 마음으로 구매했던 책은 이제 중고로 팔지도 못하고 몇 년째 방치되어 먼지가 쌓인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편집 업무의 실전에 투입될 때는 노베이스로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편집을 못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결국 그냥 하면 되는 것 같다. 거창한 계획 없이,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완벽을 꿈꾸지 않아도 어찌저찌 굴러간다.
 
 
완벽하게 시작해야 오래 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충 시작했다가 내 삶의 일부가 된 것들이 있다. 외로워서 그냥 한번 들어가 본 화실이었지만, 이제는 구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을 만큼 작가 정신이 생겼다. 우울하기 싫어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젠 본격적으로 목표 거리를 늘리기 위해 컨디션을 체크하고, 보강 운동까지 챙긴다.
 
- P. 233 <완벽한 시작은 없어, 그냥 하는 거야>
 

이번에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별 고민 없이 영어 공부 앱에 대뜸 1년 치 선결제를 했다. ‘새벽 감성’에 휩쓸린 건지 앱에 나오는 캐릭터가 귀엽기도 하고 게임처럼 재밌어 보이기도 해서 결제한 것이었다.

대충 시작해서 그런지 하루 정도 앱에 들어가지 못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음 날에 들어가서 공부하곤 한다. 거창하게 매일매일 단어를 몇십 개씩 공부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방심해 며칠 연속으로 공부를 안 하는 정도는 아니니까 나 자신을 실망시킬 일도 없다.

뮤지컬 <구텐버그>라는 작품을 보며 가장 좋아했던 대사가 있다. “지금은 일단 고!!!”라는 대사였다.

자신들이 처음 쓴 뮤지컬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버드’와 ‘더그’가 대책 없이 무대에 올라 외치는 말이다. 이 대사가 너무 찰져서(?) 평소에도 마음속으로 저 대사를 읊을 때가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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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용기라는 것도 특별한 순간에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작은 실수와 완벽하지 않은 시작 앞에서도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그냥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 하루가 조금 버거웠다면, 내일은 판다처럼 대충 뒹굴다 일어나 다시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이 전하는 판다의 태도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 속에 오래 남아 함께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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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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