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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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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 『빛과 멜로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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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승준은 담임 선생님의 부탁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권은의 집을 처음 방문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했던 권은은 승준이 가져다준 카메라로 인해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자가 된 승준이 권은의 인터뷰를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이 7년만에 재회한 후 다시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전 중인 시리아로 촬영을 갔다가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실의에 빠진 권은은 존경하던 작가 게리 앤더슨의 여동생 애나의 부탁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콜린 앤더슨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애나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한편 승준은 육아휴직이 끝나갈 즈음 한 선배에게서 우크라이나 여성 나스차를 인터뷰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승준은 망설이다가 늘 분쟁 지역으로 향했던 권은을 생각하며 제안을 수락한다. 승준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좋은 것만 봤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반대하는 민영과 갈등을 겪지만, 공습 속에서 자신처럼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나스차와의 인터뷰를 계속해 나간다.

 

 

 

들어가며


 

가장 어둡고 소외된 곳을 찾아 어김없이 불을 밝히는 환한 등불 같은 작가 조해진의 장편 소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던 작품인 「빛의 호위」의 후속편이라는 말에 기대가 컸다. 여러 서사 축을 넘나들며 한 데 엮어내는 치밀한 구성력과 생생하게 묘사된 배경의 핍진성, 견고한 주제 의식에 감탄하며 읽었다. 내가 조해진을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특유의 온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깊은 절망의 순간에조차도 희망은 찾아온다고 일러주는 듯한 온기.

 

반전을 테마로 어떤 스토리를 구상하든 결국 「빛의 호위」의 메시지로 돌아오게 되었다던 작가의 인터뷰에 고개를 끄덕였다. 「빛의 호위」는 내가 조해진을 좋아했던 이유이자 그녀를 처음 만난 뒤 최근까지 소설 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녀의 소설 속 세계가 실재한다면 나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과 달랐고 나는 이제 「빛의 호위」보다는 「산책자의 행복」을, 그녀보다는 다른 작가들을, 소설보다는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나 자신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이 책을 좋아했을 과거의 나와.

 

 

 

어둠에 빛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서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성 프란치스코, <평화의 기도>

 

 

위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전문이다. 지금은 성당에 다니지 않지만, 어렸을 때 참 좋아했던 기도문이다. 세상의 모든 어둠에 빛을 밝히는 이가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숙연하고도 감동적이다. 빛과 어둠. 세상이 둘로 나뉘어있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여러 미디어에서는 온갖 전쟁과 범죄와 갈등에 대한 소식들이 넘쳐흐른다. 그런 뉴스들을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과연 인류라는 게 존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죽고 죽이면서도 인간은 여전히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건 다른 쪽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죽일 때 누군가는 살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세상의 균형이 유지되고, 우리는 세상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 균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처절하게 묘사하면서도 결코 그것의 어둠에 치우치지 않도록, 그보다 몇 배는 환한 빛으로 세상을 이끄는 조해진의 소설은 빛의 저울추와도 같다. 그리고 이 저울추는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부모의 방임 속에서 죽음을 꿈꾸며 살아가던 권은은 승준의 카메라를 통해 사진가가 되고, 한낮의 무더위에도 가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던 살마는 권은을 만나 세상을 배우고, 전쟁 속에서 공포에 떨던 나스차는 살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피난하여 출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연쇄를 만든 빛의 증여가 처음으로 시작된 관계인 승준과 권은은 7년만에 재회한다. 권은이 승준의 딸 지유에게 쓰는 편지는 이 연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지유가 승준을 닮았다면 그들의 빛은 분명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다시 전해질 것이다. 나는 「빛의 호위」에서 『빛과 멜로디』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에 <빛의 연쇄>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연쇄. 커다란 어둠에 점점이 빛을 밝히는 것. 그것이 인간의 빛이 사회의 어둠에 대항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꾸만 어둠으로 기우는 세상의 천칭에 빛나는 문장을 이어 저울추를 쌓는 사람. 그렇게 세상의 균형을 되돌리는 사람. 조해진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작가이다.

 

 

 

민영에 대하여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상적인 선의를 베푸는 다른 인물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를 꼽자면 민영일 것이다. 분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권은을 떠올리며 나스차와의 인터뷰에 응한 승준에게 민영은 불만을 가진다. 갓난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는 좋은 것만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딸 지유에 대한 강박적인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녀의 가정 환경에서 기인한 듯하다. 폭력적인 말과 무책임한 태도로 어린 민영의 마음을 짓밟은 민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다. 승준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누구를 만나든 아버지를 닮은 구석을 발견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유독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다 끌어안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라온 대로 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좋은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찾는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낯선 것이라면 피하고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익숙한 것이라면 이끌리는 게 우리의 본능이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생애 초기에 건강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성장 후에도 비슷한 상처를 되풀이하게 될 확률이 높다. 말하자면 '어둠의 연쇄'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민영은 승준을 만나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찾지만,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지 못한다. 지유가 생긴 뒤 자신이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민영은 권은이라는 순수한 선의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자신은 오래전에 그런 세계를 떠나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권은이 승준에게 소개한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을 보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민영에게 어떤 빛을 보여준 것일까. 열이 나는 지유를 데리고 응급실에 도착한 민영을 뒤늦게 찾아온 승준에게 민영은 나스차의 소식을 묻는다. 승준이 대답에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민영은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잘 도착하긴 했는데 여정이 피곤했는지 나스차가 좀 아팠나 봐. 다행히 바로 병원에서 산모에게 맞는 약을 처방받았고 지금은 많이 회복됐대. 근데, 당신 왜 그래? 지금, 울어?“

승준의 말에 그제야 민영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마구 닦았다.

"지유는 괜찮을 거야."

"아니잖아."

"뭐?"

"나스차도 나았고 아기도 잘못된 게 아니었잖아. 왜 사람 놀라게 해, 왜!"

 

 

공습이 이어지는 도시에 남겨진 임산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던, 그런 고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에도 공감하지 못했던 민영의 마음을 둘러싼 높은 담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녀는 이제 지유의 아픔뿐만 아니라 나스차와 그녀의 아이의 아픔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삶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민영을 붙든 것은 다름 아닌 지유였다. '우리가 함께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그녀는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평생에 걸쳐 얼어붙었던 그녀의 세계가 녹아내리는 순간, 기나긴 어둠의 연쇄가 빛을 만나 마침내 단절되는 순간이다.

 

 

 

인연이란 신비


 

『빛과 멜로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권은, 승준, 민영, 지유, 알마 마이어, 노먼 마이어, 장 베른, 콜린 앤더슨, 게리 앤더슨, 애나 앤더슨, 살마, 나스차, 옥사나……. 이들 모두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지는 빛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연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던 인연이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이어지고,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만남이 서서히 끊기고, 평생 마주칠 일 없었을 먼 곳의 사람과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잊으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영원히 기다린다.

 

권은의 사진이 포착한 수많은 빛, 평소에는 숨어있다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퍼져 나와 피사체를 감싸는 빛들은 전부 어디에서 왔을까? 선의가 빛이라면 빛이 머무는 곳은 사람과 사람 사이일 것이다. 즉, 빛은 인연에 깃든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성질을 지녀서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떻게든 돌고 돌아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권은과 승준이 32년 전 처음 만나서 어른이 되어 재회하고 다시 7년만에 만난 것처럼.

 

그러니 내 곁에서 사라져 가는 사람들, 또는 이미 기억조차 흐릿해져 버린 사람들과도 언젠가 근사하게 재회할 수도 있다. 물론 그때는 내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고 벌써 변해가는 중이기도 하다. 권은의 세계를 오래전에 떠나왔다고 믿는 민영처럼. 하지만 권은의 사진과 승준의 인터뷰가 둘을 이어준 것처럼, 사람의 운명과 인연의 얽힘은 아무도 전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구든 다시 만났을 때 적어도 떳떳할 수 있도록, 나도 빛을 따라가야겠다. 권은과 조해진의 작품처럼 커다란 빛이 아니더라도, 그저 눈앞을 조그맣게 비추는 촛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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