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도 상반기 내내 페스티벌에 다니기 위해 매일 2시간씩 홈트레이닝을 했다. 날씨 좋은 날에는 오후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산책로로 나가 뛰었다. 원래 이렇게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올해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짧게나마 영상을 올렸는데,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자 놀란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부분 “너 체력 괜찮아?”라거나, “너 공연만 보러 다니니?” 같은 말들이었다.
대체 페스티벌은 어쩌다 나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일까? 모든 변화의 시작은 아주 우연히, 밴드 음악에 빠지면서였다.
첫 페스티벌, 걱정과 설렘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동승했던 날이었다. ‘실리카겔’의 음악을 좋아했던 그 애를 위해 유튜브 밴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줬는데, 그게 내 밴드 음악 입문의 시작점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덴 3초도 길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단 몇 곡의 그 노래가 나를 페스티벌로 이끌었다.
사실 첫 페스티벌에 가기 전, 꽤 많이 고민했다. 당시 나는 밴드나 인디 음악에 이제 막 입문해서, 아는 아티스트나 음악이 많지 않았다. 특정 밴드의 특정 음악만 좋아해서는 페스티벌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페스티벌’ 자체가 가진 이미지에 대한 거리감도 있었다. 내게 페스티벌은 소위 밴드나 인디 음악을 잘 아는 고수들만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아니면 친구가 많은 ‘인싸‘이거나. 어찌 되었든 페스티벌이라는 콘텐츠가 내가 가진 성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눈 딱 감고 첫 페스티벌로 ‘사운드베리 씨어터’를 혼자 다녀왔는데, 말 그대로 ‘미친(positive)’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음원으로만 듣던 밴드 사운드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편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어 주로 좌석 존에 앉아서 관람했는데, 스탠딩 존에 더 오래 있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삐빅, 스탠딩 존 중독입니다
그 아쉬움이 나를 다음 페스티벌인 ‘피크 페스티벌’의 스탠딩 존으로 데려갔다. 그것도 무려 땡볕의 야외에서 5시간을 버티게 했다. 매일 2시간씩 운동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땡볕 아래에서의 5시간 스탠딩은 정말 쉽지 않았다.
5월 마지막 주의 날씨는 상당히 더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한강공원의 땡볕은 스탠딩존의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게 했다. 게다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앞뒤 양옆의 사람들과 밀착된 상태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날 뜨거운 햇볕 아래 땀이 점점 말라가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그러나 이 지친 기다림의 순간들은 무대가 시작되며 완전히 잊혔다. 지쳤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아티스트의 무대로 빨려 들어갔고, 그 짜릿한 감각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3시간째쯤에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로맨틱 펀치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에 나까지 다시 힘이 솟았다.
해가 저물 무렵, 결국 원하는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온전히 즐기고 나서 스탠딩 존을 벗어났다. 그리고 곧장 푸드존으로 달려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마셨다. 그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갈 때의 짜릿함은, 낮 동안의 뜨거움과 고생을 단번에 잊게 했다.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그 고통과 황홀 사이의 간격이 너무도 극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페스티벌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혼자 스탠딩 존을 즐기는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도 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생수를 건네기도 했다. 처음의 쭈뼛거림은 사라지고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페스티벌 중독자’가 되었다.
여러 무대를 즐기며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기도 했다. 예컨대 페스티벌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밴드의 무대를 볼 때마다, 베이스를 치는 멤버에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밴드 악기 중에서 베이스 기타가 가장 좋았다. 특히 현장 스피커에서 베이스 소리가 잘 들리는 날에는 두 배로 즐거웠다. 밴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밴드가 되고 싶어 한다는 유명한 밈처럼, 나도 기회가 된다면 꼭 베이스 기타를 독학해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들도 다채롭게 변했다. 여느 때와 같이 6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5’의 스탠딩 존에 서서 무대를 기다리던 중,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조명과 무대 장치가 반짝이고, 사람들의 환호와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순간,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라 환상처럼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잠시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주중에는 취업을 위한 교육을 수강하며 포트폴리오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페스티벌은 모든 게 막막하고 불확실한 삶을 잠시 잊고 자유롭게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이 빛나는 순간만큼 나 또한 나의 현실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몰두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페스티벌을 가는 일이 내 삶에 진정한 원동력이 된 것이었다.
무대가 나에게 남긴 것
여러 페스티벌을 거치며 왜 내가 이토록 페스티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질문해봤다. 나는 빵빵한 스피커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데 호기심이 크다. 페스티벌은 그런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대’였다. 나는 모든 음악을 좋아하지는 못해도 현장의 무대는 늘 즐거웠다. 공연의 매력은 그 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서, 나 또한 온전히 그 순간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날 그 플레이리스트를 듣지 않았다면,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첫 페스티벌에 가지 않았더라면 난 여전히 나의 선호를 전혀 모른 채로 지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이 일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꿈을 찾을 수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페스티벌은 내게도 낯선 나의 새로운 모습을 꺼내준 계기였다. 앞으로 가게 될 페스티벌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감각을 맞게 될지 궁금하다. 거기에 더해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청춘을 잠시라도 뜨겁게, 또 오래도록 잔잔하게 빛나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