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노래 들으세요?”, “‘bon voyage’라고, 오늘도 이거 들으면서 왔어요.”
“즐거움에 취하고 무명의 낯선 도시로 떠나도
나를 닮은 사람과 내 불안한 미래 그 사이 쯤 잠을 자고”
- 김다니엘, bon voyage 중.
추천으로 들은 노래 하나 때문에 시청 버튼을 누른 영화가 있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의 첫 성우 데뷔작이자 넷플릭스의 첫 한국어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이다. 영화가 나오기 전, 영화에 대한 소식이 나왔을 때 매우 기대감을 품었다. 평소에 김태리, 홍경 배우를 좋아해 그 조합에 들뜨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그림체와 퀄리티가 지브리 영화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공개한 선공개에 대한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반응이나 평을 보고 영화를 편식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면서도, 선뜻 시간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훌쩍 2개월이 지나 보았고, 본 후에 리뷰를 찾아봤음에도 휩쓸리지 않고 영화를 긍정하는 쪽이 되었다.
이 별에 필요한 ‘몰입감’
영화는 2050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화성 탐사에 나서는 우주인이자 과학자 ‘주난영’과 음향기기 수리공이자 뮤지션 ‘윤제이’가 운명적인 사랑을 하며 지구와 화성 사이 자리에서 각자의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감히 주장을 하나 내놓고 시작하자면 이 영화는 ‘과소평가’되었다. 영화를 무조건 극찬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전문 성우가 아니어서 몰입이 안된다.’, ‘너무 김태리와 홍경 그 자체 아닌가?’, ‘전개가 예상되는 뻔한 플롯과 부실한 서사’ 등 많은 구설 때문에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애진작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물론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충분히 전문 성우의 필요성을 느낄만하다. ‘주난영에 성우 김태리’, ‘윤제이에 성우 홍경’이라기 보다는 그냥 ‘김태리와 홍경’의 영화 같았다. 워낙 배우 자체가 유명하기도 할뿐더러 특색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라 더 그렇게 느껴진 것도 같다. 그런 부분에 집중하느라 처음 스토리에 몰입이 되지 않은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 자체에 순식간에 빨려들었고 더이상 성우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김태리와 홍경이 밀고 나가는 제 방식대로의 ‘주난영’과 ‘윤제이’ 캐릭터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한 시사회 영상에서 김태리는 “실제 연기했을 때보다 부스에서 숨결 하나하나 목소리로만 연기해서 더 부끄러웠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두 배우는 첫 도전으로 부족한 성우 실력을 연기력 그 자체로 메꾸었다. 숨결 하나하나, 떨림 하나하나, 울음 하나하나로 캐릭터에게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 감정을 보는 사람에게 전이시켜 몰입하게 했다. 첫 성우 도전치고 잘한 것도 아니었고, 애니메이션치고 잘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어떤 보충의 수식어 하나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나를 화면 밖에서 안으로 흡수시킬 수 있는 영화였다.
이 별에 필요한 ‘작화’
‘애니메이션’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일본’이다. 존재하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많기도 하고 일본 특유의 감성과 아름다움의 미학을 넘어 디테일까지 묘사하는 작화가 수년간 모여 애니메이션 장르 한자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자칫 비슷해 보일 수 있는 한국 작화가 걱정된 것도 잠시, 영화를 보는 내내 잘 구현해놓은 한국스러운 그림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시대 배경이 2050년인 만큼 극 중 미래와 시청하는 현재 사이의 괴리감이 들 수 있는 부분과 감성적인 그림체의 한국의 남산, 종로 등 곳곳의 일대를 구현한 부분이 걱정이었지만 정확히 그 부분들 때문에 영화의 이음새가 탄탄했고 상황의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아름다운 미감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는 우주를 배경 삼을 시 나타나는 특유의 반짝임들과 화려한 색감, 다채로운 섬광의 표현이 눈을 지배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본 한 인터뷰에서 윤재안 작화 감독은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 것을 보았다. (씨네21 인터뷰 중) “난영은 205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디터 람스를 참고하여 집의 분위기를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그렸다. 반면 제이는 과거에 숨어 있다. 제이의 방의 사물들이 복잡하게 놓인 것도 그 속으로 숨고 싶은 제이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그리고 김성민 미술감독은 각자의 집을 구상할 때 난영의 집은 미래적이게, 제이의 집은 따뜻하고 온기 있게 구분했다고 한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에 현실을 넣어보려 노력한 사람들의 설명은 눈을 황홀하게 하는 심미적인 부분들이 그저 예쁜 빛들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해보지 못한 부분에도 디테일의 숨을 불어넣은 이들의 노력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 별에 필요한 ‘OST’
출연 인물이 음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질 경우, 시청자로서 미리 생기는 두려움이 있다. 극 안에 깔리는 bgm이나 ost로서 말고, 뮤지션이라는 직업 하에 선보이는 노래가 좋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다. 난영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제이에게 들려줄 때, 노래가 주인공이 된다. 그때는 잔잔하게 대사 뒤에 존재해 장면을 뒷받침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래 자체가 극을 이끌고 가는 몇 분이다. 사실 이때의 몇 분에는 난영과 제이의 표정 변화에 집중하느라 노래 자체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후에 소개한 노래를 쓴 당사자가 제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제이가 ‘각 잡고’ 난영에게 노래를 불러줄 때 나는 다시 제이와 덩달아 긴장했다. 그때 흘러나온 노래는 바로 이 영화를 보게 만든 그 노래였다. 앞서 언급한 부분에 깔린 노래가 동일한 곡을 홍경 배우가 부른 버전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영화를 보기 전 들은 노래는 ‘김다니엘’이 부른 ‘bon voyage’인데, 이는 영화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 캐릭터가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극에 달했을 때 ost로서 깔린다. 이때, 서사가 거듭되며 차오른 눈물이 흘렀다.

“별을 보는 남겨진 나는 말이야 치열하게 서로를 기억하려 노래하고 있어
별을 지나 have a good ride bon voyage
또 다른 시간에 만나게 될거야. 닿지 않더라도 나란히 우린 걷고있어.”
- 김다니엘, bon voyage 중.
장면 상 지구와 화성이라는 멀고 먼 곳에 떨어져 그저 서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마음을 부여잡는 인물들의 마음을 가사에 그대로 반영했다. 다시 보지 못할 걸 알아 분명 후회할 사랑을 후회 없이 해내고, 그 마음을 기억하려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같이 살을 맞대지 못해도 이 별 어딘가에 꼭 자리하고 있을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그럼에도 나란히 걷고 있다는 가사는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캐릭터 본인이 본인을 위해 하는 다짐 같기도 믿는 구석 같기도 해서 어쩐지 안쓰러운 대단함을 품었다.
‘이 별’에 필요한, ‘이별’에 필요한?

책임을 걱정해봤자 필연적인 사랑을 거부할 순 없고, 미래를 예상해봤자 필연적인 기다림을 거절할 순 없다. 어디까지 깰 수 있나 시험이라도 하듯 매번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고 어김없이 그 속을 헤매지만, 그런 연속에서도 이 우주 속에서 지켜내고야마는 것들이 있다. 각자의 삶에 생기는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이 별’에 필요적인 것들이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이별’ 또한 이 삶에서는 거부할 수가 없다. 같이 지켜낼 것이 분명함에도 각각의 삶에서 지켜내야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별’도 ‘이 별’에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저 ‘이별’이 있음에도 ‘이 별’에서 나란히 걸어내는 모든 사람에게 기적적인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기를 염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