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이자 화학자, 그리고 여성 과학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마리 퀴리. 실존 인물의 삶에 상상력을 더한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 속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를 넘어 지금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마리 퀴리는 과학계의 중심에서 당당히 자리 잡으며 당대에 외면받던 '여성'과 '이민자'라는 이중의 사회적 편견을 과학적 업적으로 돌파해낸 인물이다.
소박한 일상 대화로 시작된 무대는 점차 과거로 이어지며 관객을 마리 퀴리의 젊은 시절로 인도한다. 파리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마주하지만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고 피에르와의 인연을 통해 라듐이라는 놀라운 발견을 이뤄낸다.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라듐은 과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그녀에게 노벨상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리 퀴리를 단순히 위대한 발견의 주인공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가 발견한 라듐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이야기는 긴장감을 더한다.
빛이 만든 어둠
라듐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라듐의 위험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퀴리 부부는 라듐의 유해성을 인정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갈등을 겪는다. 피에르는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릴 것을 주장하는 반면 마리는 라듐의 유해성이 공론화되면 다시는 연구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 우려하며 자신이 직접 라듐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겠다고 결심한다.
라듐은 단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마리 퀴리 자신이 쏟아부은 시간, 노력, 정체성의 결정체이자 자신을 세상에 증명해 준 '빛'이었다.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라듐은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과 수많은 이들의 삶을 앗아가는 '죽음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성 앞에서 마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러한 갈등과 고뇌는 단지 그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인공지능, 생명과학, 기후 변화 등 수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선택이 누군가의 삶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 속 <마리 퀴리>는 과학의 발견과 진보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여성 과학자의 길
마리 퀴리는 ‘최초’의 수식어를 여럿 지닌 인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배제와 외면의 시간이 있었다. 여성 과학자의 삶을 중심에 둔 이 작품은 여전히 유리천장과 성차별에 직면한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유의미하다.
오늘날에도 여성 과학자들은 연구 환경에서의 차별, 임신·출산과 경력 단절, 기회의 부족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 한 여성의 투쟁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목소리를 대변한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마주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려 했던 마리 퀴리의 모습은 오늘날 과학기술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싸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과 용기를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여성의 이름으로 남은 과학’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올해로 4번째 시즌을 맞이한 <마리 퀴리>는 꾸준한 작품성과 깊이 있는 메시지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매 시즌 한층 더 완성도 높은 무대로 진화해왔다. 특히 2024년에는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현지 프로덕션으로 진출해 장기 공연을 성사시키며 그 진정성과 보편성을 세계적으로 입증했다.
한 여성 과학자의 고뇌와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이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