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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강철의 연금술사> 2003년판 애니메이션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2003년 방영된 <강철의 연금술사>는 철학에 대하여 깊이 있게 다루는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의 모험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끝없이 던져 주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이외에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지금부터 두 글에 걸쳐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철학적 메세지를 여러 철학자들의 주장과 결합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다음 글에서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드와 알은 어머니를 연성하려다 신체를 빼앗기고 만다. 에드는 일부만을 빼앗겼지만, 알은 신체 전부를 빼앗겨 갑옷에 영혼을 흡착한 채 살아가게 된다. 또한, 호문쿨루스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끝없이 표출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형이상학적 질문과 존재론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먼저, 인간은 육체와 영혼 중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의하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정신으로 인해 비로소 증명될 수 있다. 알은 육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즉 영혼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데카르트적 자아를 실현한다. 알이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는 순간, 알은 스스로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호문쿨루스는 육체와 영혼을 전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왜 그들은 본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그들이 이토록 갈망하는 것인가. 이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통해 설명해 볼 수 있다. ‘모나드’란, 창문 없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라는 의미이다. 상호작용은 신의 조화 속에서만 가능하며, 각 존재는 자신의 내부 원칙에 따라 작동하고 외부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없다는 것이다.
호문쿨루스는 인간 기억의 일부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며, 인간과 본질적으로 단절된 자아를 지닌다. 이는 모나드론의 비극적인 반영으로 볼 수 있으며, 호문쿨루스는 단절에서 비롯된 고독을 보여 준다.
우리는 존재론적 관점에서도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 에드와 알은 끊임없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고통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모험을 이어 나간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실존의 불안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와 ‘부조리와 불안’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현존재’란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은 죽음을 자각하며, 의미를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부조리와 불안’이란 세계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며, 인간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인간이 의미를 찾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그들의 모험과 깊이 맞닿아 있다. 마지막에서 나타나는 에드의 자기 희생은, 죽음을 인식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행위, 즉 현존재의 실현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죽음에 대한 선취(Sein zum Tode)라고 부른다.
또한, 알폰스의 존재의 불안, 즉 본인의 정체성(인간인가 아닌가)에 대한 혼란은 하이데거의 실존적 불안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안, 그리고 더 나아가 하이데거의 ‘부조리와 불안’은 다음 글에서 등가교환의 법칙과 연관지어 계속해서 다룰 예정이다.
호문쿨루스 역시 본인의 존재의 이유, 본인의 출처, 그리고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고독감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이들은 근원 자체가 매우 모호하며,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이 역시 ‘존재의 불안’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로크의 ‘기억과 정체성’으로도 호문쿨루스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다. 로크는 “기억이 자아를 구성한다”고 말하며, 연속된 기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연속적인 기억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인간 시절의 파편적인 기억과 본인의 새로운 기억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호문쿨루스가 되기 이전 인간은 모습만 같을 뿐, 호문쿨루스와 전혀 다른 자아를 지니고 있다. 다른 이의 기억과 본인의 새로운 기억이 뒤섞인 호문쿨루스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렇듯 <강철의 연금술사>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양한 사유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매체로 작동한다. 다음 글에서는 '등가교환의 법칙'과 그 붕괴에 대하여 다루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