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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저는 인생 전체를 성실하게 살면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고요. 인생 전체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 특정한 목적을 향해서 가려고 해도 얼마든지 또 다른 쪽에서 표류할 수 있다. (중략)

 

넓은 시간을 인간이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인간이 약해서이기도 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작은 힘보다는 외부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넓은 시간은 통제 못 하고요. 이걸 세분화하면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것 같아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유튜브 채널 ‘최성훈의 사고실험’에서 한 말의 일부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그의 팬이었고, 그가 출연하는 영상을 대부분 챙겨봤다. 비단 그의 영화 평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어떤 의견을 내는 방식에 있어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타인을 가르치려 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본인의 채널에서 ‘어떤 특정 한 가지만 지상의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그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자극적인 글들과 영상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마치 인생에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정답이라고 하더라도, 각기 다른 방정식을 가진 우리의 인생에 대입했을 때 같은 답이 나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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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실함을 나의 성격 중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의 단위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루 24시간은 비교적 온전히 나의 의지만으로 통제가 가능한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쌓아 올린다 해도, 인생 전체는 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를테면 수험생활을 마친 후 부푼 마음을 안고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2년간 캠퍼스를 다닐 수 없었다. 저학년 때만 즐길 수 있는 입학식, 새터, MT 같은 것들은 당연히 즐기지 못했고, 강의실보다는 줌 화면 속 교수님의 모습이 더 익숙했던 시기였다. 긴 학창 시절의 끝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경제 불황 속에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뉴스를 허탈하게 접해야 할 때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과거에 그렸던 모습이 어느 정도는 현실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때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나만큼은 나를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나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목표를 잃으면 오는 상실감이 두려워 어느새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게 되었다. 매너리즘에 빠졌고, 자기연민에 젖었다.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점점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겁이 났다.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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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생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마냥 비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현실에 순응하라는 포기의 의미가 아니다. 뜻하지 않은 외부의 상황에 가로막혀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히 살아간다면 지나온 길에 후회는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길보다 원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도 성실함을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가끔은 그 성실함이라는 감각이 희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책상 앞에 앉아 오늘 한 일들을 짧게 정리한다. 처음에는 특별한 것 없는 하루처럼 느껴져도 적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도 기록되는 이야기는 매일 다르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작은 변화들이 보인다. 그 작은 변화들, 하루하루가 쌓여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는 나의 모습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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