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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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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토녀와 에겐녀: 색으로 들여다보기


 

프랑스 어느 한 시골, 대충 올려 묶은 머리와 민소매, 강렬한 붉은색 가디건을 걸친 채 자전거 바퀴 구멍을 살펴보는 여자가 있다. 이름은 미라벨, 소음뿐인 도시 파리를 벗어나 잠시 시골로 떠나왔다. 진땀 빼고 있는 미라벨 앞으로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머리띠를 한 여자 레네트가 다가온다. 레네트는 갖은 지식으로 자전거 바퀴 구멍을 막는 걸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본드의 양이 너무 적지 않냐, 충분하다 라며 두 사람은 작은 의견 충돌을 겪기도 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파리에 사는 미라벨과 시골에 사는 레네트가 만나 도시로 떠난 뒤 벌어지는 일들을 총 네 가지 에피소드(블루아워/ 카페의 남자/ 거짓말쟁이, 절도범, 사기꾼/ 그림 팔기)로 보여준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다투기도, 보완되기도 하는 과정을 그린다.

 

첫 번째 모험 ‘블루 아워’에서 레네트는 미라벨에게 블루 아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블루 아워라고 들어봤어요? 동트기 직전에 일 분간의 정적이 찾아와요. 낮의 새들이 깨어나기 전 밤의 새들은 막 잠이 든 직후 고요가 찾아오거든요. (...) 자연이 숨을 멈춘 것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건... 놀라운 일이에요!”

 

레네트는 미라벨이 떠나기 전에 블루 아워를 보여주려 하지만, 블루 아워가 시작되는 순간 자동차 소음이 들려와 망쳐버리게 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진 레네트는 울어버리고, 미라벨은 좀 더 이곳에 머무르겠다며 달래준다. 이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말이 많은 레네트에 비해 비교적 말수가 적고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미라벨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면이 있다. 잘 맞는 듯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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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의상을 통해서도 두 사람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릭 로메르 감독은 색상을 연출 소재로 적극 활용하여 레네트와 미라벨의 심리 상태를 관객이 짐작하게끔 한다. 붉은색 가디건을 둘렀던 도시에서 온 미라벨은 레네트와 함께 시골에 머무르면서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런 미라벨의 의상에는 점점 푸른색이 자리 잡게 된다. 그에 반해 자연 속에서 푸른색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던 레네트는 도시에 사는 미라벨을 만난 이후 붉은색 의상을 두르며 도시로 나아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그렇게 미라벨의 룸메이트로 함께 파리에서 살게 된 레네트는 붉은 옷을 주로 입으며 그녀의 그림 속에도 커다란 붉은 길이 자리 잡게 된다.

 

이 영화에서 붉은색은 꿈에 대한 열정을 상징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도시를 상징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자연에서 보았던 블루 아워와 반대인, 강렬한 만큼 갑갑해 보일 수 있는 색상. 그도 그럴 게 파리로 돌아와 붉은색 인테리어에 둘러싸인 미라벨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숨 막혀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에 나오는 붉은색과 푸른색을 주의 깊게 보다 보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레네트와 미라벨의 심리를 느낄 수 있다.

 

 


블루 아워: 침묵에 대하여


 

영화에서는 ‘침묵’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나는 이 ‘침묵’에 대한 모순을 느낀다. 도시는 이타적인 사람이 드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라 지치기만 한다. 도시는 냉철하리만큼 타인의 고통과 도움에 있어 고요하다. 손을 뻗어 도움을 외치는 노숙자의 손길과 잔돈을 거슬러 줄 수 있냐 묻는 레네트의 말에 모두 침묵한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루어진 공간.

 

레네트는 항상 ‘침묵’과 ‘고요’가 주는 경이로움에 대해 말했으나 수다스러웠다. 레네트의 수다는 어딘가 자기방어와 합리화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도 그럴 게 도시의 사람들은 어딘가 촌스러운 듯한 레네트가 돈이 없을 것이고 모든 말이 거짓일 것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네트는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약 4프랑을 주기 위해 다음날 다시 카페로 찾아가기도 했고, 가방에 온 물건을 꺼내어 병원 진료 예약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인정 보단 비웃음이다.

 

레네트는 길거리 노숙자를 보고 돈을 주며 작은 도움을 준 뒤 그녀는 노숙자를 무시한 미라벨에게 도와줄 수 있는데 왜 돕지 않는 거냐면서 논쟁을 벌인다. 그 이후 미라벨은 레네트의 말대로 거리에서 노숙자를 돕고 마트로 향한다. 이때 미라벨은 가방 속에 마트의 물건을 몰래 집어넣는 한 여자와 그녀를 지켜보는 마트 직원들을 발견한다. 미라벨은 눈치를 살피다 계산대에서 순식간에 여자의 가방을 집어 들고 마트 밖으로 나간 뒤 숨는다. 직원들은 그런 미라벨을 보지 못하고 곧바로 여자를 붙잡아 훔친 물건이 없는지 수색한다. 이후 여자는 별일 없이 마트를 떠나고 미라벨은 그런 그녀에게 가방을 돌려주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훔친 물건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미라벨은 이 이야기를 레네트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레네트는 화를 낸다. 그들을 돕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직면하게 하고 그 결과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말이다. 그에 미라벨은 그건 해결책이 아니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여자가 왜 훔치는지 잘 모르면서 비난부터 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에 덧붙여 레네트가 작은 정의감으로 누군가를 심판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미라벨 또한 일상의 지루함 때문에 스릴을 얻고자 여자를 도왔다. 이는 원치 않는 도움이었을 수도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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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질문하게 된다. 잘못된 일을 하는 이를 보았을 때 나서서 그들을 심판한다면, 그들은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을까. 자연에서의 침묵을 상징하는 블루 아워는 경이로운 경험이자 무섭기도 한 경험이라고 레네트는 말한다. 마치 법정 앞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는, 그만큼 고요한 시간이라고. 어쩌면 우리 모두 자연의 숭고함 앞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블루 아워의 고요함 속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심판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레네트가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해요.’라고 말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연이 아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다가가 진정하라며 안아주었을 때 분노하던 것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었고, 그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필요한 건 침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우리에게는 침묵과 심판보다는 경청과 이해가 필요한 건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명확한 답은 내리지 못하고 복잡미묘한 감정만을 안고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두 여자의 일상을 그렸지만, 철학적인 대화 속에서 질문거리를 남기는 영화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을 블루 아워가 다가오는 시간에 보길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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