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괴담을 좋아한다. 결말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태로 나 혼자 남겨진 채 이야기를 해석해야 하는 것도, 숨어 있던 여러가지 힌트를 조합한 후에 그제서야 헉 하는 마음과 오소소 돋는 소름의 순간도 즐기는 편이다. 동시에 한순간에 무서워진 공기에 오들오들 떨기도 한다.
어릴 적엔 뭐든지 소름 돋는 이야기를 다 그냥 '무서운 이야기'라고 불렀다. "나 친한 언니 이야기인데…"로 시작하던 괴담은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점점 부풀었고, 결국 누군가가 "꺅!" 하고 소리를 지르며 터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혼비백산한 얼굴 사이로, 목표를 이룬 이야기꾼이 짓던 미소를 마주하고서야 '아, 이야기일 뿐이구나' 하고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아는 언니의 실화'로 포장됐던 대부분의 괴담은, 돌이켜보면 이미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들이었다.
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었기에, 당시 귀신들의 탄생 배경은 대부분 안타깝고 억울했다. 원한을 품고 죽었거나, 설명할 수 없는 고통 끝에 사라진 존재들이었다. 빨간 마스크가 날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골목길을 걷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나이가 들고 나니까 무서운 게 바뀌었다. 침대 밑에 귀신이 있는 게 무섭냐 사람이 있는 게 무섭지 이런 비유들이 더 마음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고, 실제로도 사람이 더 무섭다. 덕분에 당시 유명했던 빨간마스크, 홍콩할매, 링, 사다코...지금은 다 한물 간 귀신이 되어 '그땐 그랬지'라는 말로 퉁치는 이야기가 됐다.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속에도 그런 귀신들이 나온다. 왕년에는 사람들의 비명을 축복처럼 받으며 승승장구 했던 원조 스타 귀신 '캐서린'. 옛날에는 호텔에서 허리를 꺾어 등장하는 고전적인 귀신이 통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호텔 방에 찾아오는 손님을 겁주는 아날로그틱한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캐서린의 자리는 영상 속에서 순식간에 화면 앞으로 튀어나와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제시카'가 차지하게 된다. 이름만으로도 세대 교체가 느껴지는 변화. 캐서린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감각이다.
'귀신도 일해야 산다'...는 복잡한 심경의 슬로건이 영화 내내 옆자리에 떠 있는 듯 하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캐서린 앞에 등장한 건 생전에 변변한 재능 하나 없이 살다가 죽은 신입 귀신 '통쉬에'. 그마저도 남을 겁주는 재능이 없어 소멸 직전이다. 극적인 죽음도 없고, 받았던 상장도 없고, 선한 인상 덕에 긴장감도 없어, 솔직히 말해 소멸돼도 별로 안 아까운 느낌이다.
캐서린의 특훈(?) 끝에 통쉬에는 호텔 피뢰침에 꽂히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귀신 '데뷔'를 마친다. 이미 죽었기에 거침없이 몸을 내던지는 이런 귀신들의 행동은 내내 엽기적이어서 키득키득 웃음이 샌다. 더 귀신스럽게, 더 으스스하게 움직이기 위한 연출과 연습에 매진하는 귀신들이라니. 직업 정신으로까지 느껴지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나면 통쉬에의 절규가 들린다.
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힘든 거야!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적어도 우리는 돈 벌면서 뺑이치니까. 이 영화가 호러로 분류된 이유는 수많은 분장이나 피 때문이 아니다. 죽어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상황이 호러다. 진짜 호러.
변화는 늘 먼저 제시카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캐서린이 되겠지.
매번 변화의 쓰나미 위에 올라타 적응하고, 가끔은 그것들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그 감각은 무겁고, 무섭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귀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도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변화를 덜 무서워할 수 있을까.
진짜 괴담은 귀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