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활발하게 일어나던 미투(Me-too) 운동은 문화예술계도 피해갈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미투 운동은 공연계에서 젠더프리 캐스팅, 젠더밴딩 캐스팅 등 여성이 설 무대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조차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는 여성 캐릭터 조차도 남성 배우들이 연기했다. 최초로 무대에 여성배우가 오른 시기는 16세기 중반, 약 500여년 전으로, 이자벨라 안드레이니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공연계는 남성 배역 중심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극장 공연을 떠올려보면 작품을 주로 이끌어가는 주연 역할은 남성 배역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배역의 비율이 7:3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 여성 배역이 중심에 서기 어려운 구조이고, 그 배역 조차도 조연이 다수이며, 그들은 수동적인 성격의 캐릭터인 것이 대부분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이러한 여성 배역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다. 기존의 남성 배역에 여성 배우가 캐스팅 된다면 공연계 내에서의 여성배우의 비중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여배우들은 기존의 여성 배역의 정형화된 성격에서 벗어나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도 연기에 성별이나 인종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고전극에도 유색 인종 배우, 여성 배우의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젠더프리 캐스팅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 중 차지연 배우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많이 해본 배우로 유명하다. 그녀가 <지킬앤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 역을 해보고 싶어 뮤지컬 제작사 EMK의 신춘수 대표에게 젠더프리 캐스팅을 제안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아직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말이다. 차지연 배우가 참여한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도 김호영, 서은광 배우와 함께 '월하' 역을 맡아 젠더프리 캐스팅이 진행되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제는 젠더프리의 틀에서 벗어나고, 용기를 낸 다른 여배우들과 다양하고 좋은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또 다른 젠더프리 캐스팅의 사례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하데스타운> 여성 '헤르메스' -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는 남성 배역인 '헤르메스' 역에 최정원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에서 헤르메스 역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정원 헤르메스는 다수의 관객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기존 헤르메스에 감정표현의 섬세함, 캐릭터의 따뜻함 등을 더한 것이 헤르메스에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었다.
<데미안> 배역의 경계를 허물다. - 뮤지컬 <데미안>은 젠더프리 캐스팅 뿐만 아니라 캐릭터 프리 캐스팅도 이루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캐릭터프리 캐스팅은 한 배우가 고정배역 없이 여러 캐릭터를 돌아가면서 밭는 캐스팅을 뜻한다. 2인극인 데미안은 두 명의 배우가 데미안, 싱클레어 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까지 모두 커버하며 진정한 프리캐스팅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연출가는 '존재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며 '배역 구분은 무의미한 작품'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이 두 작품 이외에도 <아마데우스>, <브로드웨이 42번가>, <광화문연가> 등 우리나라의 젠더프리 캐스팅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물론 젠더프리 캐스팅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젠더프리 캐스팅을 활용하면 캐릭턱가 더욱 입체적이게 보일 수 있지만, 관객들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캐릭터가 평면적이게 될 수도 있다.
또, 젠더프리 캐스팅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단지 '특정성별'을 연기하는 배우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젠더프리 캐스팅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오히려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젠더프리 배역에 캐스팅이 된 배우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 표현해야 한다.
관객들도 젠더프리 캐스팅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제 한국 뮤지컬은 '젠더프리'의 명칭만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해낼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