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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고향의 정의는 무엇일까?


고향 故鄕

1. 명사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명사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명사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나에게는 이 세 가지 의미의 장소가 각기 다르다. 애착 정도에 따르자면 3번이 가장 강하지만 시간의 무게를 따지면 1번의 고향은 또 달라진다. 또 2번 의미로의 고향은 내게 물론 가깝지만 다른 두 가지 고향보다는 흥미로움과 탐구하고픔에 가깝다. 이 세 가지 의미의 고향이 한 장소에 일치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호기심을 느꼈다.


고향 같은 곳이 여럿이다 보니 어느 곳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나의 뿌리가 어디 콱 박혀 있지 않다는 느낌이 오랫동안 떠돌았다. 한 지역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져 어쩌면 ‘토박이’라고도 할 수 있음에도 내심 나는 여기 사람 아니라며 선을 긋기로 했고, 돌아갈 명분과 목적이 없음에도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의 갈증이 계속됐다. 1번과 3번 의미의 고향을 마구 혼재하는 머릿속에서 이 생각의 고리를 한 번쯤 정리하고자 어린 시절 자란 마을로 떠났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곳을 정말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계속 장소를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었다. 


고향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감각을 바라는 걸까. 이리저리 다른 지역의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서 외지인으로의 자아를 즐기는 동안 내심 외로웠다. 그건 내가 외로움보다는 혼자만의 고독을 더 자주 느끼는 성정과는 달리 새롭게 알게 된 무언가였다. 모두 가족이, 친구가 여기에 있어서 삶 전반의 맥박이 한 장소에 남아 있는 게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분명 그렇게 하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를 의뭉스러워하고 떠나기를 몇 번 반복하는 사이 나는 연고는 없지만 살고 싶은 도시가 생기고, 고향이 없다고 하고 싶었다. 12년 만에 간 고향은 못 알아볼 만큼 크게 변한 것은 없었지만 분명 팽창하고 수축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히려 그 시간을 느낀 것은 내게는 그 세계가 변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것, 장소가 열심히 숨 쉬는 동안 없었다는 인식에서였다. 오히려 나를 반긴 것은 사람들이었고 내가 그리워하고 믿어온 것은 공간보다 사람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 


여전히 살고 있는 친척이 있고, 지인들이 있고, 어릴 적 들락거리던 문구점은 여전하고, 그 문구점의 주인이 여전히 같으며, 흠칫 놀랄 만큼 변했지만 분명 알아보게 되는 사람들과 장소가 아름답게 혼재되어 있었다. 내가 자란 마을은 큰 도시에서 아주 작은 곳이었고 그곳을 거의 벗어나지 않은 채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사람이 태어나 학교를 갈 무렵까지 보낸 시공간은 동력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기간을 요약하면 사람과의 교류를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의 세계가 아주 협소한 대신 깊었기 때문에 더 애착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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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고향은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공간은 정지해 있지 않고 우리가 믿는 고향은 한 가지 시점의 정지된 순간을 욕망하는 것이라 바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하나하나 생생한 기억의 현신을 마주하고 나니 나는 고향을 부정하고 싶다기보다 더 확장하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국어사전의 세 가지 의미뿐 아니라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잘 설명해 내고 싶었다. 고향의 맛이라는 표현처럼 우리는 고향을 오감으로 느낀다. 어쩌면 나는 고향을 아주 단적으로만 이해해 온 것 같다. 오직 나를 향해 정지해 있는 시간과 사람들만을 원하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좋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가게들의 자리에는 새로운 슈퍼가 들어와 있고, 여전히 남아 있는 식당이 있고 그 기억 속 왜곡을 맞추며 고향을 만난다. 나뿐만 아니라 고향도 무수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뒤틀린 채 설익었던 감정도 조금 붉어진다. 결국 고향을 찾다가 내 마음으로 돌아왔고 어떤 장소도 나를 진정으로 속하게 해주거나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는 걸 성과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밟을 땅을 내가 선택한 고향 1,2,3.... 으로 믿을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선택한 시공간에 대한 기쁨과 그 때마다 마음은 번져가고, 정말 좋아하는 도시를 알아간다는 사실에 고양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고향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떠났다는 그리움도 여전히 있다. 준다. 처음에는 어딘가 정착할 수 있다면, 내가 디딜 땅을 내가 찾으면 양립하지 못할 마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냥 계속 있다. 계속 그리움과 모험의 마음이 함께 하고 그것도 나를 설명하는 곁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사람은 그리워할 대상을 영원히 찾고 계속 옮겨간다. 어느 시점에는 고향을, 다음에는 사람을, 그다음에는 한순간을 그리워하고 욕망하는 것처럼. 고향을 짙은 향수의 공간으로 인식한 이유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갈망 아니었을까. 나에게 고향은 정지해 있는 곳이 아니라 움직이는 곳이다. 공간을 나만을 위해 정지해 있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사실이 나 또한 움직일 수 있도록 재촉해준다. 아주 활기차고 부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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