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그날 화사하고 찰랑거리는 것에 마음이 제대로 감겼었나 보다. 반질반질한 옥색 포장지 위에 십자 모양으로 둘러진 빨간 리본. 부모님 친구 분이 들고 온 과자종합선물세트가 여섯 살 아이 마음에 활활 불을 지폈다. 평소에 갖기 힘든 5천 원 상당의 과자 꾸러미가 품에 안겨진 순간, 꽃이 피듯 마음 깊숙한 곳에서 리본이 간지럽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 과자 껍데기는 훌러덩 벗겼으면서 리본만큼은 소중해 어쩌지를 못했다. 괜히 그걸 손등에 둘둘 감고 기분 좋게 풀어헤쳐진 이 느낌을 나만 알기 아깝다고 생각했다. 훗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밝고 찰랑이는 것의 기운을 멀리 퍼뜨리겠노라 소망하며.
그렇다고 해도 리본 앞에서 코카콜라송을 부르게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이 다 있는 그곳의 리본 코너에 서서. 색깔도 무늬도 두께도 재질도 저마다 다른 리본 앞에서 나는 곧잘 기분 좋게 심각해진다. 기분이 좋아지는 노랑? 여리여리한 하늘? 분위기 있는 보라? 클래식한 체크?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고심해서 고른 최종 후보 두 개를 놓고 유치한 노래를 불러 댄다. 물론 속으로 은밀하게 노래한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 또 먹으면 배탈 나, 배탈 나면 병원...’을 부르며 두 리본을 번갈아 보다가 노래가 끝났을 때 시선이 멈춰 있는 쪽을 집에 데려간다.
리본은 딱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술집에서, 서예교실에서, 일터에서, 카페에서 뜬금없이 등장해 그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를테면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 전 하늘색 리본으로 두른 책을 친구들에게 건네거나 간식 꾸러미에 리본을 둘러 만든 이별 선물을 동료 선생님에게 건네는 식으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리본 앞에서 대부분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왕이면 이 리본으로 한 번쯤 나를 더 생각했으면 하는 앙큼한 바람도 있고.
손으로 하는 일 중에 가장 설레는 일을 꼽으라면 리본 묶기가 아닐까? 리본을 선물에 대고 이렇게 저렇게 둘러볼 때면 꼭 산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묶기만 하면 끝나 버리는 초간단한 일이긴 하지만 리본 하나를 피우기까지 나는 일부러 과정을 길게 길게 최대한 늘어뜨리고 공을 더 들인다. 이 작은 리본이 어릴 적 내 마음을 기분 좋게 흩트려 놓은 기억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만큼 내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내 머리를 묶는다 생각하고 예쁘게 묶일 때까지 묶는다. 어떤 날에는 더 예쁘게 묶고 싶어서 예쁘게 리본 묶는 법, 리본 뒤집히지 않게 묶는 법 등을 검색해 새로운 타이법을 시도 하거나 영상을 틀어 놓고 같이 따라한 적도 있다. 이왕이면 리본 머리를 크게 해서 묶고 내려오는 꼬리도 최대한 길게 빼서 V자나 사선 모양으로 예쁘게 커팅해 준다. 푸는 시간이 좀 걸리도록 길게 묶는 것을 좋아한다. 풀 때의 행복감과 설렘이 조금 더 지속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한다. 그 과정에 시간을 들이는 게 귀찮지가 않다.
이 얄쌍하고 찰랑거리는 것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자고로 리본은 푸는 맛. 다 큰 어른이 실실 웃으며 리본을 푸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순간을 포착한 이후부터 나의 리본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얼떨떨한 얼굴로 리본을 잡아당기는 상대방을 보는 것만큼 기분 좋고 떨리는 일도 없다. 이건 리본을 묶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귀한 광경이다.
리본은 사람을 ‘히죽이’로 만든다. 히죽, 하고 웃느라 눈꼬리는 8시 20분 방향으로 쳐지고 입꼬리는 ‘ㅅ’의 끝자락처럼 헤(ㅅ), 하고 올라간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웃상의 강아지 얼굴이 되고 만다. 활짝 열리는, 애처럼 웃는 그 잠깐의 얼굴이 나는 너무 좋다. 해사하게 피어나는 그 순간을 보는 게 참 좋다. 관찰자 시점으로서 행복한 부분도 있고 귀여움과 천진함이 어려 있는 상대 표정을 떠올리며 선물을 건네는 상상을 하는 나도 자연스레 히죽이가 된다. 말 그대로 ‘쌍방히죽이’다.
정확히 주고 받는 게 요즘의 이치고 가는 것이 있으면 응당 오는 것이 맞단다. 심지어 더 퍼 주면 호구란다. 그런 태도를 뭔가 야무지다고 생각하는 흐름인 것 같은데...글쎄. 맞는 말 같으면서도 난 잘 모르겠다. 먼저 베풀 때 오는 기쁨도 꽤 쏠쏠하다. 이 정도의 소박한 나눔은 누리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나 싶다. 스스로 완벽한 기버(giver)를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 많은 어른이들이 잠시 근심 없는 히죽이가 된다. 그 히죽대는 얼굴이 좋아서 어김없이 리본을 두르고 있다. 한 번쯤은 순수하게 풀어져 보는 것. 리본 끝을 잡아당기며 아이처럼 방방 설레어 보는 것. 은연중 세워 둔 마음의 빗장이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는 것. 언제 어디에서 또 어떻게 나풀댈지 모르는 리본은 오늘의 나까지 환하게 밝힌다. 이 찰랑이는 기운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뿌리고 다녀야겠다. 계산 없이, 망설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