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있었다』는 단순한 생태 소설도, 스릴러도, 치유의 서사도 아니다. 이 세 가지를 정교하게 엮어, 인간의 깊은 내면과 자연의 복원을 평행하게 그려낸 절규다.
스코틀랜드 북부, 인간에 의해 멸종한 늑대를 재도입하려는 프로젝트를 위해 인티와 그녀의 쌍둥이 자매 애기가 이주해온다. 인티는 '거울촉각통각 공감각'을 가진 인물로, 타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살갗 위에서 느끼듯 체감하는 독특한 감각을 지녔다. 그녀의 예민한 감수성은, 자연의 생명과 고통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를 더욱 예민하고 절절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늑대는 왜 무서운 존재가 됐을까?
소설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두려워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늑대는 언제나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힌다. 가축을 위협하고, 사람을 공격하며, 통제 불가능한 야성의 상징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맥커너히는 이런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늑대는 결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이며, 자연의 오래된 리듬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늑대일까? 통제할 수 없는 '타자' 그 자체일까?
작품 속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누군가를 죽였다고 믿지만, 그 공포는 진실이 아닌 환상에 기초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이 허상의 두려움은 결국 폭력으로 이어진다. 늑대를 죽이고, 진실을 왜곡하며, 자기들이 만들어낸 공포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인간들. 가장 위협한 포식자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면서.
서로의 고통을, 서로의 방식으로 견뎌야 했던 두 소녀
이 작품의 진짜 중심축은 인티와 애기의 서사다. 두 자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하며 자랐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건, 그 폭력 앞에서 어머니가 보여준 태도다. 그녀는 두 딸에게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고. 하지만그 말은 때때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기억을 봉인하고, 서로를 놓아버려야 했던 아이들. 그들은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치유되진 못했다.
인티는 생태계 속의 질서를 되살리는 데 헌신하지만, 자신의 내면 질서는 보살피지 못한다.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잊어버린채, 자연과만 소통한다. 반면 애기는 세상과 단절된 채 침묵 속에 살아간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은 그녀는, 인티의 애타는 손길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은 곧 고통이고, 분노이며 또 다른 형태의 외침이다.
소설은 자매의 관계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을 통해 하나둘씩 맞춰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독자는 점점 퍼즐을 맞춰가며, 그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서로를 사랑했는지, 처절하게 서로를 지켜내려 했는지를 알게 된다. 마침내 그 사랑이 왜 그렇게 큰 고통을 남겼는지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치유되지 않은 고통, 또 다른 폭력
『늑대가 있었다』는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남긴다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언젠가 그 상처는 되돌아온다. 인티와 애기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사회와 인간, 생태계 전체에 대한 은유로 뻗어간다. 우리가 외면한 상처 그리고 자연은 더 큰 파괴로 되돌아온다. 마치 늑대를 몰아낸 결과로 생태계가 무너졌듯, 억눌린 고통은 또 다른 폭력으로 터져 나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회복의 이야기다. 인티는 늑대를 지켜낸다. 폭력을 막아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그 과정은 잔혹하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애기의 침묵도 끝내 균열을 드러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작은 희망이며, 그들이 서로를 붙드는 유일한 방식이다.
늑대는 지금도 있다
소설에서 늑대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늑대는 인간이 지워버린 존재였고, 사라지길 바랐던 과거였고, 두려움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숲속에, 기억속에, 침묵 속에. 인티가 늑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애기를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책을 통해 '두려움'과 '사랑'을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상처이며, 숨 쉬는 생명이고, 우리가 외면했던 어떤 감정의 기록이다. 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읽는 내내 먹먹했고, 다 읽은 뒤엔 오래도록 마음이 울렸다. 가정폭력이라는 사적인 기억과 생태계 회복이라는 공적인 사안을 이토록 유려하게 엮어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안에 늑대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생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상처 입은 존재들이 결국 서로를 구원한다. 그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