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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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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놓친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브레이킹 아이스〉라는 영화인데, 다가오는 6월에 국내 개봉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2013년에 영화 〈일로 일로〉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안소니 첸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던 청춘들이 함께 꿈 같은 시간을 보내며 변화를 맞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중국의 대표 배우 주동우와 류호연, 굴초소가 주저하는 사이 어른이 되어 버린 세 인물을 연기해 제76회 칸영화제 초청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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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주동우)는 실력이 출중한 피겨 스케이트 유망주였으나 예기치 못한 발목 부상으로 꿈을 포기하고 연길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같은 연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를 돕고 있는 샤오(굴초소)는 소중한 꿈도, 특별한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별 볼 일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던 이들의 일상에 외로운 영혼 하오펑(류호연)이 등장한다. 친구의 결혼식 때문에 연길에 온 그가 상하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치면서 세 사람은 7일간의 특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화면 속 세 인물의 모습은 여행의 동반자로서 함께일 때 완전해 보이지만, 매 순간 미묘한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형용할 수 없는 멜랑콜리에 사로잡힌 채 서로를 찾고 갈구하는 세 청춘의 짙은 로맨스를 보다 보면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이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 같은 영화의 장면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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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아이스〉는 겨울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얼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극의 초반부에서 나나와 하오펑, 샤오 세 사람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거닐다가 발을 굴러 얼음을 깬다. 또 하오펑은 얼음을 입에 넣어 사탕처럼 깨물어 먹기도 하고, 손의 열기에 녹아버린 얼음이 그의 얼굴 위에 떨어뜨리는 물방울은 마치 그가 흘린 눈물 같다.

 

이렇게 ‘얼음을 깨뜨리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타포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안소니 첸 감독은 ‘물은 낮은 온도에선 얼음이 되지만, 얼음은 꺼내놓으면 순식간에 녹아 다시 물로 돌아간다는 원리를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의도대로 세 인물이 우연히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이는 살을 에는 추위와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따사로운 온정의 눈빛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단단히 굳어버린 얼음도 녹아서 다시 물이 되는 것처럼, 냉담한 현실 속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이들의 마음도 서로가 나누는 아주 조금의 온기로 인해 서서히 녹아내렸던 것이 아닐까.

 

영화가 관객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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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7일간의 여정을 끝낸 후 세 인물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오펑은 꿈에 그리던 백두산 천지는 결국 보지 못했지만 상하이에 돌아가 예전만큼 우울하고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길을 절대 떠나지 않을 것 같던 샤오는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찾게 될 테고, 나나도 꿈과 같이 내려놓았던 소중한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 두 번째 삶을 시작할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그 삶이 예전과는 분명 다르리라는 것을 관객으로서 확신할 수 있었다.

 

불행은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찾아와 일상을 망가뜨리지만, 반대로 희망 또한 인생이란 길 위에서 자취를 감춘 채 언젠가 나타날 우리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절대 깨지지 않을 듯 단단해 보여도 얼음은 금세 다시 녹아 물이 된다는 당연하고도 울림 있는 메시지가 세 청춘의 이야기를 통해 얼른 관객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기를 기대해 본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오는 6월 4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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