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과거 우리 사회에는 신분 제도가 있었다. 물론 저 먼 구석기시대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사유 재산을 가지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를 잡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점차 사회가 발전하며 신분 제도는 사라졌지만 계층이라거나 보이지 않는 한계라는 것은 여전히 존재함을 종종 느끼곤 한다.

 

지금보다 먼 과거에는 노예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존재했다. 우리 말로 따지면 양반이라 이르는 사람의 집에 머무는 하나의 재산으로,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노예는 그 말이 어떻게 존재하느냐만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누군가가 지시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죄>에서는 그러한 '노동자'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병역, 조세, 그리고 토지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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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서술자가 어느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스크바-카잔 철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내가 아는 어떤 검량원이 대화 중에 저울에 물건 하역 작업을 하는 농민들은 36시간을 연달아 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해 신뢰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이야기가 믿기지 않아,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러 간다. 검량원의 이야기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어제 아침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지금까지도 일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고용한 사람이 놔줄 때 그들은 일을 마칠 수 있었다. 36시간 연속으로 일을 하는 부당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먹고살아야 하기에'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토록 부당한 자리에도 들고자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처지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었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견직물 공장에서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공작기계에서 12시간을 일해, 그들은 병색이 돌았으며 출산된 아이들은 80퍼센트 사망한다.

 

서술자는 이러한 현실을 분석하며, 과거의 농노제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 또한 농노들의 처지가 좋지 못하다고 인정하더라도 개선하는 데는 스스로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을 만큼만 변화시키려 했고, 지금의 부유층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이다. 한편 노동자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은 부유층들의 생활에 아주 큰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한편 그 문화라는 것은 노동자에게 노동을 강요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문화라는 것을 최고의 혜택이라고 확신하며, 언젠가 법학자들이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정의를 세우라'라고 말한 것과는 반대의 것을 과감하게 말한다. 지금 그들은 '정의가 파괴되더라도 문화를 세우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한다. 모든 것을 실제로도 이론으로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문화, 그러니까 공장과 제작소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 주로 가게에서 판매되는 모든 것은 바꿀 수 없다. (...)

 

진정으로 계몽된 사람들의 신조는 '정의가 파괴되더라도 문화를 세우라'가 아니라 '문화를 파괴되더라도 정의를 세우라'이다.

 

하지만 문화, 유용한 문화라면 파괴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뚝으로 땅을 파고 관솔로 불을 밝히는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가 노예 제도 아래에서 대단한 기술적 발전을 이룬 것은 헛된 게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자기 쾌락을 위해 형제들의 생명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 형제들의 생명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온갖 기술적 성취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 형제들을 노예 상태로 속박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된 온갖 도구를 활용하게끔 삶을 조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글이 쓰인 시대인 1900년 무렵 말고 지금을 떠올려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귀천을 두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령 아르바이트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더러운 것을 직접 만지며 정화하거나 그런 것을 수리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우리 생활 속 많은 편안함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고고하게 누리는 문화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당장 누려야 하는 권리만 바라볼 뿐이다. 그들을 낮추면서 자신의 권위가 쌓이거나 회복된다고 믿는 것일까. 나의 권위는 나로써 만들어지는 것이지, 타인으로써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노동자를 무시할 이유나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수단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노예제도가 우리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 다수를 어떤 다른 소수가 쥐락펴락하는 노예제도 말이다. 둘째, 이와 같은 상태를 인정하고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을 노예화하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셋째, 이러한 원인을 발견함으롰 이를 제거해야 한다.

 

 

잠시 이를 두고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을 노예화하려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추측해 볼까. 전에 어느 곳에서 노예들은 노예 해방을 바라지 않고, 그들의 노예가 될 또 다른 노예를 바란다는 짧은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런 게 가장 클 것이다. 적은 손해를 보며 큰 이익을 보려 하고, 나의 시간을 따로 또 보장하는 데 노예를 두는 것보다 쉬운 것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노예가 있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뭐 있겠는가. 내가 하는 게 어렵지, 부리고 시키는 것은 간단하다.

 

앞서 내가 말한 것은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것이고, 톨스토이는 그 시대상에 맞춰 토지 부족과 조세, (그리도 앞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인) 충족되지 않은 욕구라는 근원적인 근거를 들었다. 토지의 사적 소유권을 없애고, 조세를 폐지하여 부자들에게 이전하는 상황들을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할 테고,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농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조세 문제가 엉키고 엉켜 그들은 여전히 노예 상태로 에속되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 벗어날 수 없는 처지도 처지인데, 그들을 '노예'로 두는 이들에게도 결코 원인이 없지 않다.

 

 

"말씀해보십시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회를 조직해야 하는가?" 부유층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부유층 사람들은 노예 소유주 역할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그들은 스스로가 지주의 위치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즉시 노예를 재배치하기 위한 온갖 계획을 고안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주인 노릇을 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할 수 있도 해야 하는 한 가지는 지금 행하는 나쁜 짓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들이 행하는 나쁜 짓이 무엇인지는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들은 노예들의 강제 노동을 이용하고 이를 관두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직접 그 강제 노동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 이것이 그들이 그만둬야 하는 일이다.

 

 

톨스토이는 익숙해진 삶의 모든 방식을 변화시키고 그간 누려온 이익을 포기하고 정부가 아닌 자신과 가족을 상대로 긴장된 투쟁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부 요구를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박해를 감당할 준비를 갖춰야 하며, 부유층과 노동자 모두 처지 개선을 위해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를 위해서 해야 할 일로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것이 해석하기에 따라 반감이 일 수는 있을 듯 싶다. 정부 활동이나 조세 납부 등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당연히 이러한 목소리들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지향했던 사상을 본다면 또 그 거부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톨스토이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가해지는 강제성과 폭력에 반대하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혁명 수단으로서의 폭력도 거부했다고 한다. 비푝력의 강조가 어느 인물 하나를 선명히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급진적이고 지나친 환상에 불과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가 그렇다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곳곳에 우리가 이룩해야 할 것들이 담겨 있다 생각한다.

 

두꺼운 책이 아님에도 톨스토이 사상을 이해하며 읽느라 개인적으로 독서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톨스토이의 전반적인 사상을 알게 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많은 생각과 지향점, 혹은 당시 사회의 모습(그리고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여전한 사회 구조)을 알 수 있다. 사람 하나하나가 행복해지는 길을 아주 철학적이고 분석적으로 써 놓은 책으로, 여러날 시간을 두고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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