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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소년에게서 온 편지]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2인 부조리극이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무대 소품은 타이어 하나와 하모니카 두 개가 전부일 정도로 소박하다.

 

공연은 하나의 이야기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닌 조각조각 흩어진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보이스카우트로 등장하는 소년들은 장난 혹은 놀이처럼 전쟁 속에 있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짜 전쟁으로 들어간다. 진짜 전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이 편지는 대체 누구에게 닿는 건지 궁금해진다.

 

 

 

난 이러려고 태어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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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자신이 보이스카우트라는 것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남성성이라는 단어와도 연결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규칙과 신념은 그때 당시 소년들이 동경했던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하고, 그들의 놀이는 전쟁이다. 남자끼리는 아무리 무서워도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손을 잡으면 안 되고, 맹세는 이들의 대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모든 남성성을 가지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통령을 자주 아버지에게 대응한다. 대통령은 소년들이 철저히 규칙을 지키는 이유이며, 전쟁에 능숙하기 위해 계속 연습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소년들이 모방하고 싶어 하는, 동경하는, 동기부여 그 자체인 존재이다. 이를 통해 그 당시에 소년들에게 남성성을 상징하는 대통령이 얼마나 큰 존재이며,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난 이러려고 태어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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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활기찬 아이들의 모험과 도전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충격적이었던 두 가지 장면을 소개하며 그 의문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소년들이 보이스카우트에 있는 아이들을 소개하던 중 안경 쓴 한 아이를 소개한다. 정말 짧은 대사로 그 아이의 하루하루를 이야기한다. 그 아이는 보이스카우트에 오자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울었고, 친구들은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에 대한 설명은 정말 이게 전부이다. 안경을 썼다는 것,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는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아이는 소년들이 동경하는 남성성을 상실한 아이이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설명했지만, 남성성을 상실한 존재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차갑게 외면당하는지 알 수 있다.

 

다음의 대사도 아주 짧게 지나치지만, 충격적이며 의미 있는 대사이다. 기존 보이스카우트들은 동물을 표적 연습대로 사용했던 것 같다. (대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점차 전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한 대원이 사람을 표적 연습대로 사용한다는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남성성의 상징인 대통령이 명령한 삶 속에서 소년들은 어느새 폭력의 선봉장으로 서 있다.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누군가는 죽어가고, 소년들은 대통령이라는 한가지 감각 빼고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소년들은 죽음 속에서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난 이러려고 태어난 건가?


이들이 이렇게 전쟁 속에서 살았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에게 닿기 위해서. 하지만 정말 이 편지는 대통령에게 닿았을까? 신에게 닿았을까?


이 연극의 원제는 [존슨 대통령이나 신, 둘 중 누구든 먼저 읽는 사람이요. (A Letter To Lyndon B. Johnson Or God Whoever Reads This First)]이다. 이들의 삶은 대통령에게 절대 닿지 못했을 것이다. 신념과 이데올로기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이 소년들의 죽음이 매우 사소하기 때문이다. 아마 수많은 소년들이 이렇게 죽어갔을 것이고,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은채 차가운 땅에서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들을 이곳에 보냈던 대통령은 이들의 이름을 모를 것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공연을 보는 내내 분했고, 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망설여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신에게 닿아서 아마 이 연극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그게 내가 소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인 것 같다. 연극을 보면서 맹목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의심 없이 믿는 신념과 빠짐없이 따른 규칙이, 내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이 나를 폭력으로 이끌고 있다면? 어쩌면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다. 그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어른을, 남성을 꿈꾸며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빼앗기고 있는가? 인류는 지금껏 전쟁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도 소년들의 편지는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피로 물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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