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참지 못하고 표지 안쪽에 적힌 작가 정보를 훑었다.
그 톨스토이가 맞고 그 시기도 맞는데 책의 내용이 지금의 현실과 닿아있어서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권력을 쥐는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 장악으로 인해 타락했고, 공익보다는 사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곤 했어요."] - 189쪽
["이전에는 사람들 사이에 환호와 충심을 불러일으켰던 권력이 지금은 일부의 더 많아진 훌륭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관심, 더 나아가 종종 경멸과 증오까지 불러일으켜요."] - 194쪽
["인민은 더 이상 권력을 믿거나 존경하지 않으며 그저 복종할 뿐이지요."] - 195쪽
우리는 지난 겨울, 권력을 가졌던 한 사람으로 인해 혹독한 계절을 나았다. 교과서에서 봤던 단어가 실시간 뉴스로 흘러나왔다. 과거의 기록으로 남을 줄 알았던 탄핵 시위는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모양을 달리해서 다시금 광장으로 시민을 모았다.
국가가 권력을 소유하면 공권력이 되어 공정성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아나키즘을 품었던 시절 진한 여운을 남기고 간 말이었다. 이따금 공정의 탈을 쓰고 부정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미묘한 반감이 명확한 문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권력을 쥔 모든 것을 부정했다. 신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넘겨준 적이 없는데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인간을 판단하는 존재라니, 거부하고 거절했다.
권력은 종종, 자주 타락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익을 향해 빛을 발한 어떠한 권력자의 이야기가 뉴스에 실렸다. 주어가 특정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정의로운 검사나 판사 캐릭터에 몰입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삿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경멸에는 최대도 최하도 없다.
톨스토이는 공동의 삶을 위해서는 모두가 선해져야한다고 했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이라 한순간에 이룰 수는 없고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 사회주의의 몽상이나 종교적 사고가 깃든 믿음. 나는 여기에 더해 아나키즘의 합의되지 않아 두루뭉술해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옳은 것을 향한 움직임. 이러한 것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전히 되도 않는 권력을 쥐려하고 그런 이들을 선망하는 사람이 넘쳐흐를지언정.
["그들은 짐짓 농민의 복지를 염려하는 척은 하지만, 농민들에게 필요한 단 하나, 토지만은 결국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서는 인민의 노동을 이용하는 무위도식자로서의 유리한 지위를 상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 147쪽
["사람들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그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저 노동자들이 만든 것을 먹어 치울 뿐입니다."] - 173쪽
얼마 전 전농의 트랙터 시위가 있었다. 요구안을 살펴보면 쌀 의무 수입 중단과 농산물 공정 가격 보장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아우르는 말이 있다. 바로 식량 주권. 식량 주권과 비슷하게 식량 안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지수는 매년 떨어지고 있다. 식량안보지수는 지속적인 식량의 공급, 식량의 품질과 안전 등을 따져서 각국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우리나라는 2022년에 70.2점을 받아 7계단 하락한 39위였다. 현재 쌀 품귀 현상에 시달리는 일본은 8위였다.
우리에게도 비축미나 정부미라는 말은 익숙하다. 쌀은 어딘가 비축되어 있고 묵은 쌀은 어디론가 간다. 쌀은 왠지 언제나 거기서 남아돌 것만 같다. 일본은 오랜 시간 쌀 생산 감축을 위해 노력했고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신동진 쌀을 비축미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고 수출로 새로운 판로를 열어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가장 일상적이고 쉽게 와 닿는 게 쌀이라서 쌀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해보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자급자족이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토지가 단순히 시대상 반영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은 면할 수 있다는 것. 생산수단의 독점이 아니라 스스로가 생산하고 소비한다. 아나키즘적 사고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수입에는 변수가 많다. 지속적으로 양질의 식량이 가격폭등 없이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래도 인간의 생존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땅을 점유하여 소유한 사람은 부유하고, 땅에서 일하거나 땅을 일구는 사람은 가난하다."] - 222쪽
물론 생산수단의 소유를 다른 방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소수의 돈을 가진 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임금노동자들은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여 때로는 존엄을 잃기도 한다. 회사에서 돈을 제일 잘 벌어가는 건 실적이 좋은 직원도, 야근을 많이 하는 직원도 아니고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을 받아가는 사장의 친인척이다. 돈이 돈을 버는 것과 고작 돈을 벌기만 하는 삶이 나란히 펼쳐져있다. 평행을 유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