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보다 값지게 여기고 싶었던 배움은, 여행자가 되어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학생도, 그렇다고 직장인도 아닌 내가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어본 것이다. 선택지에 없던 옷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머물다 떠나는 존재로서 낯선 땅, 낯선 풍경, 그리고 낯선 사람들을 차례대로 만났다. 그 모든 과정에서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마주하는 방법, 또 아쉬움 없이 보내주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아쉬움을 보내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속 모든 순간과 함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잔상들을 그때그때 놓아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황을 대하는 자세는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었다.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가던 4월 초의 어느 날. 기차를 놓쳐 뜻하지 않게 기차역에서 발이 묶여버렸던 적이 있다. 처음이라 미숙했던 탓에 시간 계산을 실수했고, 급하게 다시 예약한 기차 시간은 무려 7시간 뒤였다. 시간이 붕 떠버린 바람에 예정되었던 파리에서의 당일 일정은 모두 취소해야 했고, 결국 밤늦게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도 했지만, 오히려 이런 아쉬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했다. 7월이나 8월 등, 여행 성수기였다면 늦은 기차마저 매진이라 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교통편이나 묵을 곳을 다시 알아봐야 했을 수도 있다. 또 다행히도 핵심 일정은 다음날로 잡아두어 큰 일정 지장은 없었다. 최악까지는 번지지 않은 상황에 되레 감사함을 느꼈고 오히려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 위안하기 위함이었지만, 이 모든 게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또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털고 일어나 반갑게 다가오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준비를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여행자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때와는 달리, 우연히 호스텔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나누는 순간들이 더없이 깊게 다가왔다. 한 나라와 도시를 보낼 때마다, 그곳에서 만나 찰나의 기쁨을 함께했던 모든 인연이 눈앞에 선명했다. 독일에서 사물함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던 친구, 오스트리아에서 낯설어하는 나를 위해 여행 이야기를 나눠주던 친구가 있어 금방 새로운 도시와 친해질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뜻밖의 동행으로 값진 노을을 보러 떠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나처럼 한국에서 훌쩍 떠나온 부부와도 서로의 도전과 용기를 나누던 시간도 있었다. 꿈같은 몇 날 혹은 몇 시간이 지나 헤어지는 때가 올 때면 왜 그리 섭섭함이 밀려왔는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확률은 극히 낮을 테지만, 또 마주할지도 모르는 반가운 기적을 기다려보며 다시 또 현재를 지내보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아쉬움과 보낸 무수한 순간들이 가득하다. 분명 다 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왜 아직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남는 걸까. 소매치기나 치안 등 혼자라 어렵고 긴장했던 탓에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움마저도 오롯이 나였던 애틋한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둠 속 유일하게 빛나던 독서 등 아래 일기장. 글자들이 여행지에서의 날들을 파노라마처럼 비춰냈고, 그것을 찬찬히 눈으로 담아냈다.
다시 떠난다면 부족했던 부분을 메꾸어 더 성장한 내가 될 수 있겠지. 다짐들을 볼펜 끝에 꾹꾹 눌러 적었다. 다시 찾은 서울에서는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과 사람들과 아파트들. 그 안에서 유럽에서 본 듯 비슷하고도 다른 나무들을 발견할 때면, 그 좋았던 기억으로 저절로 미소가 번지게 된다. 서울, 나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경유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여행하듯 살아봐야지. 첫걸음을 나서기 전, 부디 두고 온 모든 것들이 여전히 안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곳에 마지막으로 남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