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담론과 공포의 윤리성: 과학과 오컬트의 경계에서
1994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M의 핵심 설정인 '낙태된 태아의 원혼이 생존한 아이에게 빙의한다'는 플롯은 당시 사회적으로 민감했던 낙태 문제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공포의 외피를 빌려 제기한다.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하기 어려운 낙태라는 주제를 오컬트적 상상력으로 우회하여 소비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특히 M은 유사 과학, 한국 무속신앙 등을 혼합하여 독특한 공포의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이는 과학적 합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죄의식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여성의 몸과 폭력의 스펙터클: 젠더화된 공포와 사디즘적 시선
드라마 M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 심은하가 연기한 ‘마리’가 초자연적 존재 'M'에게 잠식당하고 기괴하게 변모하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한 공포 효과를 넘어, 젠더화된 폭력의 스펙터클화와 맞닿아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 고통받고 파괴되는 모습에서 특정 유형의 쾌감을 느끼는 심리는 프로이트적 '스코포필리아(scopophilia, 관음증)'와 연결될 수 있으며, 특히 로라 멀비(Laura Mulvey)가 주창한 '남성적 시선(male gaze)' 이론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 멀비에 따르면, 대중매체 속 여성은 종종 남성적 시선의 대상으로 객체화되며, 이는 여성 캐릭터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남성 캐릭터가 고통받는 서사와 여성 캐릭터가 고통받는 서사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남성의 고통은 영웅적 시련이나 능력의 증명 혹은 권력 투쟁의 과정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의 고통은 성적 대상화, 순결의 훼손, 모성의 파괴 등 젠더적 특수성과 결부되어 더욱 복잡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한다. 특히 드라마 M에서 심은하의 아름다움과 그 파괴는 'M'의 복수라는 정의로운 명분과 결합하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역설적으로 정당화되고 심지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위험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아름다운 여성의 '타락' 또는 '변모'를 통해 기존의 질서나 통념에 도전하는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성을 더욱 신비화하거나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독해가 요구된다.
더 나아가, '마리'의 변모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공포, 예컨대 녹색 눈동자로의 변화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체 능력의 발현은 단순한 기괴함을 넘어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이론화한 '아브젝시옹(abjection)'의 개념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크리스테바는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육체는 남성보다 열등하고 불결/부패한 것으로 폄하되었음'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의 몸은 미학적 측면에서 혐오스러우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이중성을 내포한다'고 말한다.¹
'M'의 존재 자체가 낙태된 태아의 원혼이라는 설정은 출산과 생명, 모성과 죽음이라는 여성적 신체와 관련된 근원적 공포와 터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가 점차 통제 불가능하고 혐오스러운 '괴물적 여성성(monstrous-feminine)'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시청자에게 안전한 거리에서 관음적 쾌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아름답지만 위협이 되는 이중적 여성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투사하고 재확인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즉, 심은하라는 당대 미의 아이콘이 파괴되고 오염되는 모습은 남성적 시선 하에서 이상화된 여성성과 그 여성성이 언제든 위협적인 타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공포를 자극하며, 이는 'M'의 복수라는 서사적 장치를 통해 교묘하게 정당화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드라마 M에서 그려내는 공포는 여성의 신체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넘어,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공포를 재생산하는 문화적 실천이 된다.
복수의 대리인과 소녀의 전복적 힘: 영화 <마녀>와의 공명
'M'이 '마리'의 몸을 통해 자신을 해한 이들에게 복수하는 설정은 표면적으로 권선징악의 서사를 따른다. 힘없는 소녀 혹은 소녀의 몸을 한 존재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막강한 힘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모습은 최근 영화 <마녀>에서 나타나는 소녀 히어로의 원형적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억압받는 존재의 전복적 힘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그 힘이 주체적인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존재 ‘M’에 의해 발현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즉, '마리' 개인의 주체성은 'M'의 도구로 전락하며, 그녀가 겪는 폭력은 'M'의 복수를 위한 필요악으로 정당화될 여지를 남긴다.
시대를 초월하는 문제작 M의 현재적 의의
드라마 M은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낙태, 과학과 초자연,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국적 오컬티즘과 결합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진정으로 문제적인 텍스트로 남는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젠더화된 폭력의 시선과 그 소비 방식에 있다. M을 현재의 비평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은 단순히 과거의 유행을 회고하는 것을 넘어, 미디어가 여성을 재현하고 소비하는 방식, 그리고 공포라는 장르가 숨기고 있는 젠더 정치학을 성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M은 단순한 공포 드라마를 넘어, 당대의 사회적 불안과 윤리적 고민, 그리고 젠더 감수성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풍부한 논의거리를 제공하는 아카이브로서 여전히 그 가치를 지닌다.
¹ 정연이,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abject) 개념 연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이화여대 박사논문, 2018, iii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