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우리는 늘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 영화제는 독립영화가 지닌 고유한 실험 정신과 과감한 도전을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을 통해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신선한 자극을 선사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섬세하게 조명하거나, 영화라는 매체의 틀을 넘어서려는 혁신적인 시도들이 돋보이며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의 눈에 띄는 약진이었다. 묵직한 주제를 예리한 시선으로 파고들거나, 주변부로 밀려났던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영화들은 국경을 넘어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때로는 불편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는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스토리텔링의 다채운 변주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3670>은 한국경쟁 부문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영화다. 게이와 탈북자라는 복합적인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탈북자 사회의 현실을 섬세하고 진솔하게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관계'와 '자립'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두 가지 정체성 안에서 균형 있게 담아내며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성장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연출은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 역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세 명의 청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청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존중과 선택권을 이야기한다. 수어, 인공와우 수술 후의 발화, 그리고 수어와 발화의 동시 사용이라는 세 가지 소통 방식을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우정과 현실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였다. 특히,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은 인상적이었다. 인공와우의 노이즈나 묵음 등을 활용하여 청인 관객들에게 농인이 세상을 듣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고충과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영리한 장치로 작용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매력은 묵직한 메시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젊은 영화감독들의 패기와 실험 정신이 빛나는 작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기존의 영화적 틀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는 흥미로운 시도들을 보여주었다. 독창적인 촬영 기법, 예측 불허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 찬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전에 없던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며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것이 국제영화제의 매력이지 않나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 영화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였다. 사회 문제를 기반으로 한 심리 스릴러로 예상하고 관람했지만, 후반부의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영화의 장르와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해석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몇 줄의 대사와 몇 컷의 장면 변화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이 영화는, 엔딩에 다다르면 깊은 여운과 함께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첫 전주국제영화제 경험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스크린을 통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장르와 국적의 영화들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관람하며 신선함과 깊은 여운 등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이번 영화제를 통해 현재 영화계가 직면한 어려움과 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은 다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현장에서 영화계 종사자들의 호소에 가까운 업계 분위기를 들으며, 현재의 부진과 약세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 감독들의 열정과 노력은 더욱 값지고 빛나 보였다.
결론적으로, 2025년 전주국제영화제는 '경계 너머의 확장'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다양한 시각과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영화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확인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수작들부터 형식적인 혁신을 꾀하는 작품들, 그리고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까지, 전주국제영화제는 단순한 영화 상영회를 넘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교감하고 영감을 얻는 축제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내년 영화제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물결과 감동을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