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추적하는 일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때로는 연민과 안타까움, 경외감과 존경심이 교차하며, 그 궤적은 우리가 지닌 언어 이상의 감정과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지구 위 존재하는 모든 개인의 삶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나지만, 유독 예술가의 삶은 더 각별하게 다가오곤 한다. 아마 그들의 여정과 감정, 고뇌와 깨달음이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또 하나의 언어로 남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삶의 편린들이 때로는 노래로, 그림으로, 혹은 조형으로 응축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가령 음악가의 경우 같은 작품, 같은 선율이라도 나이에 따라, 삶의 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울림을 낸다. 단지 기술적 완숙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성숙과 상처, 성찰의 흔적들이 스며든 해석.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들의 생을 조용히 엿보게 된다. 예술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게 개인의 시간과 흔적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깨닫는다.
삶의 격랑을 견디는 가장 우아한 방식
세계적인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인 마이클 페피엇의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그러한 감각을 선명하게 일깨운다. 반 고흐부터 프랜시스 베이컨, 자코메티, 호안 미로, 앙리 미쇼까지. 그가 ‘자신만의 신전’에 봉헌한 27인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오랜 시간의 교류와 인터뷰를 통해 복원한 이 책은, 단순히 미술사를 넘어서 예술가라는 존재의 가장 내밀하고, 가장 취약한 순간을 응시한다.
예술가의 삶은 흔히 신화화되거나 영웅 서사로 포장되지만, 페피엇은 그 허상을 벗기고 한 사람의 일상과 굴욕, 고독, 그리고 무수한 절망과 마주한 채 ‘창작’이라는 형언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그것을 견뎌낸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애정만큼이나 냉정하다. 오랜 친구였던 베이컨에게서도, 도발적 추상의 대가인 달리에게서도 그는 비평적 거리를 유지한다. 예술가를 우상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삶의 폐허 위에 세운 고유한 세계를 경외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들의 그림자가 더욱 깊고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그 거리감 덕일 테다.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온다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을 읽으며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어쩌면 그 작품의 창작자라는 한 인간과 마주하는 일이다. 표면적인 미학적 즐거움을 넘어, 그들이 살아낸 날들과 마음의 결, 그 거친 흔적을 더듬는 일이다.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불안과 허무, 치열한 갈망의 파편을 받는다.
니콜라 푸생, <겨울(대홍수)>, 1660~1664.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 나오는 니콜라 푸생의 <겨울(대홍수)>(1660~64)에 대한 해석처럼, 인생은 “난파선에 매달리고, 아무것도 없는 바위일망정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순간의 안전을 구하는” 일이다. 페피엇이 들려주는 27인의 예술가는 모두 그런 이들이었다. 대홍수 같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맨손으로 삶의 파편을 그러모아, 예술이라는 가장 우아한 저항의 언어로 새긴 이들.
영화 <반 고흐>, <마리아 칼라스>, 라벨의 <볼레로> 등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일생을 다룬 영화들이 떠오른다. 그 누구도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예술가들의 일생은, 그들이 남긴 위대한 작품의 찬란함만큼이나 처절하고 굴욕적이며, 지독하게 외로웠다. 삶이, 고통이, 존재의 무게가 그들을 파괴할 수 없었던 건 그들이 그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으로 승화했기 때문이었다.
책의 서두에서 페피엇은 하루를 가장 좋아하는 그림 한 점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출근길의 짜증, 일상의 권태, 인간관계의 뒤틀림조차 그 그림 한 점 앞에서는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위대한 예술과의 교감이란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고요한 영역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충분히 독자를 예술가의 내밀한 방으로 초대한다. 독자는 때로 벽에 걸린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탄생시킨 손끝의 떨림을 응시하게 된다. 삶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캔버스 위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그 숭고한 행위를 목격하게 된다.
삶의 절망 속에서, 무기력과 좌절 앞에서, 그런 예술 한 편을 꺼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공을 초월해, 일면식 없는 이의 삶에 조용히 응원을 보내고, 또 그의 손끝이 당신의 고단한 오후를 쓰다듬는 경험.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