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딴 ‘르 스타일 무하’ 신드롬을 일으켜 파리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나아가 19세기말 유럽 예술 흐름의 판도를 뒤흔든 아르누보 운동의 선두주자로 활약한 알폰스 무하의 원화전이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지난달 20일 포문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알폰스 무하 탄생 165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그의 작품 300여 점을 선보인다.
일약 스타덤에 올라 손쉽게 대중과 예술계의 주목을 받은 듯 보이지만, 알폰스 무하의 작품 세계를 찬찬히 뜯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섬세한 가치관과 도전정신,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표현력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무하의 명성과 성공 이면에 그의 예술 세계가 체코 민족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면밀하게 살핀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화합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무하의 작품들이 마이아트뮤지엄의 클래식하고 꼼꼼한 구성을 만나 밀도 높은 전시가 탄생했다. 예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하는 단단하고도 다정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알폰스 무하 원화전’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확고한 스타일과 섬세한 화풍
무하의 화풍은 아이러니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는 굉장히 정교한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옷깃의 주름이나 재질에 따른 빛 표현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으며 인물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장식물들은 각기 다른 디테일과 섬세한 색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져 거리를 두고 전체적으로 작품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구성이 돋보인다. 그의 작품에서는 선 하나조차 허투루 쓰이지 않았으며 인물과 장식, 타이포의 배치는 확고한 스타일의 구성을 이룬다. 맥시멀한 표현을 통해 깔끔한 인상을 주는 아이러니함이 무하 스타일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하의 화려한 작품 구성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인물 표현이다. 무명의 삽화가였던 그를 파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뮤즈이자 전설적인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작들의 포스터 작업이었다. 사라는 장르와 성별을 넘나드는 배역을 소화했다. 그리고 무하는 각 작품들 속에서 사라가 표현하고자 했던 캐릭터를 누구보다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표현해냈다.
‘동백꽃의 여인’에서 무하는 연약하고 섬세한 주인공이었던 사라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해당 작품은 활자 없이 접해도 스토리가 느껴지는 듯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은빛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테라스에 기대선 사라는 고요하고도 처연한 얼굴이다. 물결이 흐르듯 떨어지는 하얀 로브 자락의 디테일은 그녀가 지닌 몽환적인 분위기를 확장한다.
그런가하면 무하가 표현한 ‘햄릿’ 포스터 작품에서 남성 배역을 연기한 사라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히 이목구비를 들여다보면 분명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지만 그녀의 결연한 표정과 기개가 어린 눈빛, 꼿꼿한 자세에서 앞선 작품의 연약한 여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무하는 인물의 특징과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살려내 화려한 작품 구성에서도 인물을 돋보이게 만든다.
장르와 형식을 가리지 않는 도전 정신
이번 전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던 무하 스타일의 또다른 매력은 ‘지속적인 새로움’이었다. 그의 작품은 여러 브랜드 제품의 패키징 속에서, 책의 표지에서, 달력에서, 그리고 건축물에서까지 다채로운 방식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었다. 장르와 형식을 가리지 않은 도전 정신이야말로 무하 스타일의 오랜 번성을 이어갈 수 있던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상업 광고 속에서도 무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녹여낸 독특한 표현법을 구현하며 효과적인 브랜드 효과를 창출했다. 특히 와인 브랜드인 모엣 샹동과의 협업에서 무하는 와인병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기존의 표현방식과 달리 본인의 스타일을 녹여낸 여성상의 쉐입을 와인병에 대입하여 그려내며 신선한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이 이끌렸던 작품은 무하의 주얼리 디자인 습작인 ‘네 개의 보석-토파즈’였다. 당시 무하의 작품들은 주얼리 매장의 예술적 스타일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비록 습작 작품 한 점 만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정교하게 세공된 화려한 보석으로 이루어진 해당 작품은 무하가 구축해온 정교한 예술 세계를 평평한 캔버스에서 끄집어내 입체적인 구현을 이루어 내며 그의 작품 세계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장르를 초월한 무하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성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글라스 작품이다. 1931년 성당 내부 창으로 제작된 해당 작품에서 무하는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린 후 가마에 구워내는 기법을 통해 생생한 색감을 구현해냈다. 정교한 장식 표현이 주특기였던 무하 스타일이 유리 공예라는 독특한 기법을 만나 섬세한 회화적 기법이 두드러진 장식물이 탄생한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해당 작품의 도안과 더불어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를 가벽 사이즈로 구현한 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덕분에 창틀로 구분된 각 구역 속 다양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면밀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품 뒤 조명을 심어 두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다채롭고 선명한 색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예술을 통해 도덕적 이상을 실현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슬라브의 화가’ 작품을 감상하며 예술가 무하가 아닌 인간 무하 그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치의 감시 하에서도 조국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기꺼이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조국을 위한 지폐와 우표 디자인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권’ 포스터 작품은 지친 표정의 슬라브인 소녀와 절망에 빠진 부모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당시 체코어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애국심과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무하의 작품은 일번반구 없이도 예술이 어떻게 사회와 역사에 깊이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가 참여한 체코 최초의 우표 디자인은 정치 문화적으로 주요한 상징물들을 무하 스타일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독립 후 새로운 출발 앞에 선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렇듯 자신의 예술 세계를 통해 올곧은 가치관과 신념을 담아내고 그 이상을 실현하였기에 무하의 작품 세계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