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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누구에게나 꿈결같은 한때의 추억이 있다. 회귀, 혹은 영원을 바라게 되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들은 잃은 것인지, 잊은 것인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속되는 나날들 속에서 그저 손 틈 새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어떤 마법 같은 음악들은 그 너머의 동심을 다시금 일렁이게 만들며, 흘려 보낸 지난 날의 추억들이 물밀듯 다시금 우리에게 닿아오도록 한다. 이런 순간들을 느끼며 이것이 음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과 음악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은 국내에서도 크게 사랑을 받았다. 개봉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를 누리며 세대를 지나 이어지는 추억의 흐름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랑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는 바로 저절로 동심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성의 OST, 바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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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 공연을 감상했다.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송영민, 지휘자 안두현이 함께한 이번 공연은 스튜디오 지브리 음악의 정수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호불호 없는 지브리 특유의 분위기에 소위 ‘지브리 열풍’이 부는 현재, 지브리의 음악을 다루는 공연들도 많은 추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브리 페스티벌>이었는가?


해당 공연은 총 2부, 1부 ‘다양한 작곡가의 스타일로 선보이는 지브리 OST’와 2부 ‘지브리 오리지널 OST’로 나뉜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바로 1부, 클래식과 지브리 스튜디오 사운드트랙의 독특한 만남이다. 다양한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되는 지브리 OST는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새로운 시도 자체가 생경하면서도 기대되었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청각적 즐거움의 장, ‘축제 Festival’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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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이 가장 인상깊었다. 암전, 그리고 푸른 조명이 일렁이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된다. 조용한 공연장 내에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피아노 선율이다. 드뷔시의 <꿈 Rêverie L.68>과 이웃집 토토로의 OST,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편곡된 것이다.

 

드뷔시의 ‘꿈’은 말 그대로 생생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없는 꿈을 선율화 한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곡인데,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눈물이 핑 도는 듯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 ‘꿈’은 ‘바람이 지나가는 길’로 이어지고, 중첩되고 얽힌다. 바람이 불어오는 끝없는 길을 따라 걷는 어느 봄 밤의 꿈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었다. 그 자체로도 너무나 사랑하는 두 곡이지만 함께 어우러질 때 이렇게 아름다우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언제나 몇번이라도>는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과, <원령공주>를 드뷔시의 <눈 위의 발자국>과 편곡되었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중 <그날의 강>과 함께 연주되었다.

 

본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 중 하나가 각 연주가 시작하기 전에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해설자로 나서 모든 클래식 편곡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진행했던 것이다. 전혀 클래식을 몰랐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익숙한 선율을 찾을 수 있게끔 배려하는 프로그램의 편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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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각 곡 별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하프 등의 악기를 선두로 지브리의 오리지널 OST가 연주되었다. <어느 여름날>, <벼랑 위의 포뇨>, <인생의 회전목마> 등 너무나도 익숙한 음악을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선율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바쁜 일상 속 가뭄의 단비처럼 한 줄기 쉼과 감동이 되어준 공연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거나 잊으며 살아간다. 이들을 다시금 맞닥뜨릴 때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오묘하다. 이번 <지브리 페스티벌> 공연을 통해 바쁜 삶 속에서 놓치고 있었던 순수한 동심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생경한 듯 익숙한 음악을 따라 그간 놓치고 있던 안락한 풍광 속으로 빠져드는 것. 종종 이러한 쉼을 찾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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