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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요즘 들어 새로운 감정이 귀찮다고 느낀다. 삶을 살다 지칠 때도 있는 거지. 지치는 건 당연한 거라지만 4월에 올 줄은 몰랐다. 지치는 건 달려서 그런 거라지만, 나는 롱런보단 롱워크를 하는 사람이기에 좀 부끄럽기도 하다. 정말 제대로 걷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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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힐링할 수 있는 귀여운 오리 정면샷

 


나는 포스터 달력을 달마다 방문에 바꾸어 붙인다. 매달의 행사에 맞추어진 고양이 일러스트를 보며 잠에 드는 게 일과의 마무리 중 작은 낙이다. 바쁜 하루가 유독 잦아지면 달력은 고사하고 화장을 지워 잠에 드는 게 겨우다.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쩌다 종일 쉬는 날이 생기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달력을 보는 시간을 가진다. 뭐 해? 라는 연락엔 달력을 보고 있다고 한다. 달력 속 고양이 일러스트의 한 공간, 예를 들어 고양이의 발끝을 보거나 고양이 옷장에 걸린 귀여운 남색 자켓을 한 시간 동안 보는 거다. 그렇게 달력을 보면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흘려버린 시간들을 되찾는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어디서 빠져나간 걸까? 왜 나는 귀찮아하고 흐른 시간을 아까워할까. 누가 시간을 더 빠르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시간이 두렵다. 내가 이십대로서 해야 할 일을 정해 둔 듯한 사회의 틀도 두렵다. 이런 스트레스를 나만 받는 것도 아닐 것이다. 누구나 어느 상황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는 찾아온다. 한 예시로 내게 문예창작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매번 사담을 파일에 적어 주는데, 그들이 고민하는 사항에 나는 이런 내용의 첨언을 붙인다.


 

당장은 긍정적인 상황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다면 현재의 감정의 정점 가까이에 다가가, 그 감정을 맛보는 것도 좋다. 다만, 감정의 끝을 찍고, 다시 올라올 것.

 

 

편안하게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도 굳이 나쁜 감정을 맛보게 하는 내 방식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나는 학생들이 그 감정을 당장 떨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을 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 좋은 상황을 직시하고 나의 감정을 살피는 게 우선이다. 조금 ‘T’스러운 발언을 하자면, 안 좋은 감정도 겪고 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귤이 제철일 때만 먹어 상큼하단 것을 안다면, 조금 무른 귤이 오히려 더 달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답문으로 적다가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걸 알게 됐다. 내가 나를 사랑하려면, 그 감정을 먼저 알고 스스로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적었던 답문이 나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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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감정이 바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솔직하게 힘들다. 무언가 사고를 돌리려 해도 힘이 나지 않아 침대에 누워있는 게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주 조금만 힘을 내보자. 칼로리를 걱정하느라 자주 먹지 못했던 마라탕 사 먹기. 집 앞 편의점만이라도 다녀오며 일과 이후의 ‘나’ 챙기기. 최근의 나는 감정을 챙기기 위한 행복 소비로 다이소에 가 바세린 립테라피를 사기도 했다. 어제 저녁에는 야매 요리로 이름도 길게 붙인 딸기요거트치즈케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휘핑 크림 스프레이를 사 보았는데, 엄청난 갓성비를 자랑하는 오천 원의 행복이었다.


스트레스 별 거 있나. 마찬가지로 행복 별 거 있나.

 

우린 너무 빨리 어른이 된 탓에 스스로를 돌보는 게 미숙하다. 내가 나를 돌보고, 맛있는 것을 나에게 먹이는 것. 스스로를 일찍 재워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 이 글을 작성했을 당시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야기를 정리하며 사랑하는 무언가보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적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내 글을 보러 와 주는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또 같이 행복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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