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재능은 설령 그 분야의 문외한일지라도 모른 체 할 수 없게 한다. 벼락 같은 충격 이후 황홀경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4월 11일 금요일,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 첫 내한공연에서 보고 들은 스윙은 그런 것이었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가 공연 내내 건반으로, 현으로, 드럼으로, 그리고 합주와 솔로로 따로 또 함께 하는 스윙의 향연을 펼쳤다.
평소 재즈를 배경음악 삼아 감상해왔기에 재즈는 몰입할 수 있는 음악이라기보다 몰입을 유도하는 음악에 가까웠다. 당연히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이름을 알 리 전무했다. 작은 호기심을 안고 찾은 성수아트홀은, 자신감과 여유로 무장한 세 명이 입장한 후 공기가 바뀌었다. 공연 팸플릿에 적힌 각 멤버들의 걸출한 이력을 읽고도 크게 동하지 않던 심장이 설렘으로 두근댔다.
곧 시작된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90분이란 시간은 빠르게 깎여나가고 재즈의 에너지가 남긴 여운이 길었다. 재즈는 그 90분 동안 완전히 정신을 사로잡는, 몰입되는 음악이었다. 무언가에 심취하면 뒤늦게 찾아오는 약간의 민망함도 없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음악을 들었다.
One for the Swing, Two for the Show
무대를 장악한 건 넘치는 쇼맨십과 관객석을 쉬지 않는 매트로놈으로 만드는 스윙이었다. 특유의 그루브가 몸짓에서 묻어나오는 마티스 피카드는 한 곡을 마칠 때마다, 그리고 연주 중간 중간 관객과 소통했다.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Hello" 연주로 말 대신 강렬한 인사를 남긴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는 마티스의 멘트를 통해 한국에 방문한 소회와 음악에 얽힌 스토리, 감상 포인트를 전달했다. 마티스가 멘트를 던지고 호응을 유도할 때마다 공연장은 재즈 특유의 무게감을 조금씩 떨치고 쾌활한 분위기로 차츰 들떠갔다.
마티스가 유려한 피아노 선율로 객석의 주의를 삽시간에 집중시키면 이어 파커 맥엘리스터의 베이스와 조에 파스칼의 드럼이 합류해 음악의 밀도를 올렸다. 이들의 음악이 전개되면 재즈에 조금씩 빠져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스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심장과 뇌의 한 구석을 간질이는 테크닉을 자랑하는 마티스, 육중한 베이스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파커, 리듬의 변주로 연주 중 계속 관심을 빼앗아 가는 조에까지, 시선을 바쁘게 옮기면서 머리까지 스윙하는 기분이 들었다. 단언컨대 무대 아래에 있던 누구든 몸을 가만히 둘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본 공연이 좋은 공연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오로지 이들의 무대 장악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악은 잘 알지는 못해도 즐길 수는 있듯, 재즈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태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 상상에 기대 만들어진 음악들을 설명하면서 형형색색의 미지가 깃든 마다가스카르의 정글의 이미지가, 내 안의 작고 연약한 어린 내가, 오래된 사랑의 설렘이 재즈에 맞춰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갔다. 알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는, 알지 못하기에 느껴야 하는 재즈를 그들은 하고 있었다.
"Inner Child"와 "Is This Love"에서는 상상력이 폭발하는 걸 느꼈다. "Inner Child"를 연주하기 전, 따뜻하고 감성에 젖은 목소리로 눈을 감고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떠올려 보라던 마티스 피카드의 요청에 따라 일곱 살의 나를 떠올렸다. 곧 속주로 시작된 피아노 선율이 달음박질하며 웃는 어린 나를 소환하고 이어지는 셋의 합주가 이 상상에 색을 입혔다. 사라지지 않은 꿈과 동심을 되찾는 것을 넘어 그 꿈이 다시금 생명력을 얻는 기분이 들었다.
"Is This Love"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낭만에 젖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좋아하는 상대와 함께 있을 때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에 더해 이런 감정에 직면할 때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듣는 이들은 이미 이 음정과 분위기가 사랑이라는 걸 눈치 챈, 눈에 보이는 사랑의 시작이 그려진 것이다. 느릿한 박자에 따라 전개되는 느긋하고 달콤한 멜로디에 올라탄 로맨틱한 기류가 사방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이름도, 그 무엇도 알지 못했지만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그들의 첫 내한공연에 자리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첫 만남에 시선과 귀를 사로잡히는 경험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드문 경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끝나갈 때 느낀 헛헛한 감정은 흥분이 빠져나가며 발견한 빈 자리가 아니라 아쉬움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연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건지 '첫 내한'이라는 문구를 다시 읽으며 안도했다.
이것이 처음이었다면 그 다음도 있기를. 그들의 재즈와 스윙을 어떤 방식이로든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종지부를 찍는 날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 채로 이 리뷰를 빌어 그들의 음악이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