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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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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이유 없이 피곤한 날이 많다. 해야 할 일은 끊임없고, 휴대폰 속 알림은 멈추지 않는다. 마음은 조급하고, 감정은 이유 없이 예민해진다. 분명 몸은 쉬고 있는데, 뇌는 어디서도 쉬지 못하고 있는 느낌. 이런 날엔 책을 펼친다. 익숙한 문장에 눈을 맡기고 있으면 마치 따뜻한 담요를 덮은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알고 보니 이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단 6분의 독서가 스트레스를 60%까지 줄여준다고 한다. 그 어떤 활동보다 큰 효과를 가진다고.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내가 느낀 건, 진짜였구나.'

 

그런 나에게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말은 다정한 위로처럼 들렸다. 바쁘게 달리는 삶 속에서 잠깐 멈추어도 괜찮다고, 예술이라는 조용한 공간에 들어와 한숨 돌리자고 속삭이는 듯했다. 책의 제목만 보면 단순한 힐링 에세이 같지만, 그 안에는 뇌과학과 심라학, 예술의 힘이 어우러진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수전 매그세턴과 아이비 로스는 예술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으로 짚어가며,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회복의 도구'임을 이야기한다.

 

 

 

예술은 뇌를 깨우고, 감정을 흐르게 한다


 

이 책은 신경과학의 섬세함과 예술의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져, 예술이 뇌를 치유하는 여정을 다정하게 안내한다. 각 장마다 예술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림 한 점, 음악 한 소절을 '단순히 감상'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뇌의 다양한 영역이 동시에 깨어난다. 감정, 기억, 상상력, 공감 능력이 총동원된다. 예술은 뇌의 '운동'이자 '휴식'인 셈이다. 자극과 안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이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감성적인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뇌는 예술을 통해서 새로운 스냅스를 만들고, 기억을 재구성하고, 감정을 조율한다. 마치 숨겨진 언어를 배우듯, 예술은 뇌에 말을 건다. 그리고 뇌는 그것에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반응한다.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감정, 도저히 말로 꺼낼 수 없는 마음의 층위를 우리는 예술로 나타낸다. 붓질 하나, 색채의 흐름, 피아노의 울림 안에 어떤 감정은 타인의 마음에도 조용히 닿는다. 예술은 감정을 꺼내고, 흘려보내고, 다시 정돈하게 해주는 하나의 길이다.

 

 

 

표현은 마음의 틈을 열어주는 열쇠


 

우리는 누간 쉽게 말로 꺼낼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마음속 깊이 눌러 담긴 기억들,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채 조용히 쌓여가는 감정의 층위들. 그런 것들은 어느 순간,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 천천히 흘러나온다.

 

책에 따르면, 과거의 아픈 기억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고, 그 기억에 의미와 맥락이 생긴다고 한다. 아픔이 말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마주하고, 조금씩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회복을 위한 가장 정직하고 다정한 언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말보다 깊은 공감, 침묵 속에서도 느껴지는 마음의 온도, 언어로 닿지 못했던 마음들이 예술 앞에서는 서로를 향해 살며시 열린다. 책은 예술이 고통을 잊게 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말한다. PTSD, 불안장애,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음악과 미술, 글쓰기 등을 통해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다양한 사례는, 예술이 얼마나 깊이 있는 회복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안에서 독이 된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이해의 순간이 바로, 회복이 시작되는 자리가 된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책이 전하는 가장 반가운 메시지는 이것이다. 예술은 미술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는 것.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기,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기, 낙서 같은 그림 그리기, 빛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바라보기.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예술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그렇게 하루의 속도를 늦추는 순간, 뇌도 마음도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단지 뇌를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이 책은 삶이 너무 복잡하고 마음이 지쳐갈 때, 우리가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법을 가만히 일러주는 책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숨이 고르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예술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괜찮아요, 잠깐 쉬어가요.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요."

 

결국 예술은 나를 향한 가장 조용한 응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천천히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 내 뇌가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분명 '쉼'이 필요하다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 쉼의 자리를 언제나 마련해 두고 있다. 아주 너그러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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