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jazz.jpg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지만 난 어릴 적부터 재즈 특유의 느낌을 좋아해 왔다. 재즈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지만, 그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도 아니다. 나 역시 “저는 재즈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때면, 괜히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걱정하게 된다. 소수의 마니아가 즐기는 문화일수록 그 깊이는 더욱 깊고, 진입장벽은 높기 마련이다. 재즈는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 곡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되곤 한다. 따라서 "어떤 노래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재즈 애호가는 응당 곡 이름과 그 곡을 연주한 아티스트, 즉 주인공이 되는 뮤지션뿐만 아니라 세션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이름까지 줄줄 읊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아직 나의 지식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썸네일.jpg

 

 

그럼에도 나에게 꽤나 디테일하게 기억되는 몇 개의 곡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마일즈 데이비스의 Miles Davis and the Modern Jazz Giants 앨범에 수록된 "The Man I Love"라는 곡이다. 이 곡은 조지 거슈윈이 작곡한 노래이고, 이 버전에서 트럼펫은 마일즈 데이비스, 베이스는 밀트 잭슨, 드럼은 케니 클락, 피아노는 델로니어스 몽크가 맡았다.

 

모두 대단한 음악가들이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와 델로니어스 몽크라는 이름은 특히나 익숙하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들의 이름은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마일즈 데이비스는 재즈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던 아티스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재즈라는 큰 음악의 줄기 속에서도 다양한 하위 장르와 유행이 있었지만, 그 유행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마일즈 데이비스가 함께했다. 그의 역사가 곧 재즈의 역사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트럼펫을 부는 트럼페터로서 언제나 팀을 이끌며 재즈를 개척해 나가는 아티스트였다. 언제나 새로운 사운드를 좇았고, 재즈의 변화 한복판에 있었다. 마일즈 없이 재즈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델로니어스 몽크는 재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갑작스럽게 피아노를 툭 치거나 연주 도중 극적인 적막과 망설임을 강조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했다.


이 곡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단순히 두 전설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다. 몽크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투정 같고, 반항 같고, 때로는 장난스러운 태도가 이상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때때로 그런 식으로 세상에 소심한 저항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 그런지 몽크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반면 마일즈는 그런 몽크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고 곡 전체를 끌고 간다. 짜증 섞인 말투 뒤에도 그가 연주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서 나는 아티스트의 리더십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몽크의 유별남을 감당해 내며 음악을 완성시킨 마일즈가 나는 존경스럽다.

 

두 천재의 만남은 195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루어졌다. 당시 마일즈는 마땅한 피아니스트를 구하지 못해 결국 몽크를 피아노 역으로 기용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은 고스란히 음악에 담기게 된다. 이 앨범에는 "The Man I Love"라는 곡이 Take 1과 Take 2, 두 가지 버전으로 실려 있는데,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이 곡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먼저 Take 1을 들어보자. 노래는 시작한 지 8초 만에 여러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된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몽크는 언제 연주를 시작해야 할지를 물었고, 이에 짜증이 난 마일즈가 엔지니어였던 루디에게 “Hey Rudy, put this on the record, man – all of it!”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앞부분의 소란이 그대로 음원에 담기게 된다. 몽크 같은 실력자가 언제 연주를 시작해야 할지를 모를 리 없지만, 마일즈의 곁에서 나름의 유쾌한 고집을 드러내 보려던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보면 그의 짓궂은 장난이 괜히 귀엽게 느껴진다.

 

Take 1의 피아노 솔로는 5분 30초 즈음부터 시작되고, 이어 6분 44초 즈음부터는 마일즈의 트럼펫 솔로가 등장한다. 이때 몽크는 마일즈의 연주 중에도 기본적인 코드를 눌러 옆에서 보조한다. 곡이 끝난 뒤, 마일즈는 몽크에게 자신이 솔로를 하는 동안에는 연주를 삼가라고 말했고, 세션 내내 두 사람은 논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제 Take 2를 들어보자. 피아노 솔로는 4분 55초 즈음에서 시작된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몽크는 갑자기 연주를 멈춘다. 10초가 넘는 시간 동안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 공백을 채우려는 듯 마일즈의 트럼펫 소리가 5분 40초에 끼어든다. 하지만 마일즈가 끼어들자마자 몽크의 피아노 소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등장하며 연주를 이어간다. 그리고 6분 10초부터는 마일즈의 솔로가 시작되는데, 이때는 Take 1과 달리 몽크의 피아노 보조가 아예 없다. 마일즈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솔로에서 마일즈를 당황시키는 적막을 연주한 것이 참 몽크답다는 생각이 든다. 마일즈는 당황하면서도 재빨리 연주에 끼어들어 곡을 진행시키려 했고, 몽크는 이내 다시 돌아와 자신의 솔로를 마무리한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리스너의 입장에서 몽크의 장난 덕분에 두 대가의 연주를 두 가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즐겁다.

 

그래서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개성과 감정, 때로는 충돌과 불협까지도 감싸 안으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어쩌면 인생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몽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했고, 마일즈는 그 다름을 견디며 리더로서 음악을 완성시켰다. 그들의 연주는 완벽하지 않기에 더 인간적이고, 정답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나 역시 나만의 리듬과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어긋나고 멈추더라도, 다시 음악은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재즈를 듣고 또 듣게 되는 이유다. 재즈란, 그런 것이다.

 

 

 

컬쳐리스트.jpg

 

 

강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멋진걸 탐험하며 멋나게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폼생폼사 인간, 강민이라고 합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