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서 중요한 건 서사일까, 화려한 연출일까.
음악과 다양한 연출이 동반되는 뮤지컬에는 다른 장르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화려함이 있다. 때문에 관객들의 기대지평은 대부분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함(퍼포먼스)에 맞춰져 있으며 그에 기반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하지만 일부 뮤지컬이 화려한 연출과 무대장치에 집중한 나머지 서사에서는 비교적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두고 관객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깊이 있고 짜임새 있는 서사를 기대한다면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보는게 적절하다는 의견과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된 티켓 가격을 고려했을 때 뮤지컬에도 훌륭한 서사는 기본이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 다 합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대형 뮤지컬이 다른 문화예술 영역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퍼포먼스적인 부분을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뮤지컬에서는 서사의 중요적이 비교적 떨어진다거나 서사에 아쉬움이 있어도 일정 부분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예산의 한계로 인해 오케스트라나 대형 무대장치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규모의 뮤지컬을 볼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관객들은 티켓 가격과 예산의 한계를 인식하고 작은 공간 및 적은 무대장치로 인한 연출의 한계, 비교적 조악한 음향과 효과음 등을 감안하고 공연을 관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소규모 뮤지컬이 대형 뮤지컬보다 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볼 수 있다. 관객들은 ‘뮤지컬’이라는 장르 구분이 붙는 순간 그 공연에서 연극 등 여타 장르와는 구별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규모 뮤지컬에서는 풍선효과로 대형 뮤지컬 대비 부족한 퍼포먼스와 압도적인 경험과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 풍부한 서사나 작품의 매력을 기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 뮤지컬이 때로 서사 등 다른 부분에서 미진하더라도 많은 예산이 투입된 무대장치, 오케스트라 등의 화려함으로 그 결점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다면, 소형 뮤지컬에게는 한정적인 예산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요구되는 기대지평을 기민하고 기발하게 충족시켜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진다.
관객들의 이러한 요구는 소규모의 뮤지컬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일지라도 ‘좋은 뮤지컬’의 기준이 될 수는 있다.
첫 질문(뮤지컬에선 서사가 중요할까 화려한 연출이 중요할까)에 대한 나름의 답을 하자면, 뮤지컬이 뛰어난 연출과 화려한 무대장치를 통한 압도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면 다른 부분들이 미흡하더라도 장르의 특성 상 용인될 수 있으나 예산 등 현실적인 조건의 제약이 있는 경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연출이나 서사의 전개를 강화하면 더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뮤지컬 ‘이솝이야기’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학로의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된 만큼 대규모의 화려한 연출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아쉬움을 보완할 수 있는 소규모 뮤지컬만의 충분한 매력이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안무나 무대장치, 상징들이 의미하는 바가 불명확했으며 서사의 전개도 다소 미흡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부의 이야기 전개 속도는 다소 늘어졌고 이로 인해 10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작품임에도 그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이 작품의 서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주인집 딸 다나에의 얼굴에는 어린 노예였던 티모스의 실수로 화상 흉터가 자리하게 된다. 주인은 자비를 베풀어 티모스의 얼굴에 같은 흉터를 남기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시킨다. 흉터로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던 다나에는 티모스와 집 안에서 함께 이야기 짓기 놀이를 하며 추억을 쌓아가지만, 어느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티모스는 다나에를 떠나 노예상에게 팔려가게된다. 하지만 티모스는 사실 유모였던 엄마의 희생으로 인해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았으며 이야기를 하는 능력이 무역에서 재능으로 발휘되면서 새로운 곳에서 인정받게 된다. 이후 왕에게까지 인정을 받지만 모함에 휘말려 죽을 위기를 겪게 되고 그때 티모스가 도움을 줬던 또다른 노예 이솝이 대신 희생하면서 그는 다나에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져내려오는 이솝이야기는 티모스가 아름다운 희생을 한 이솝이 지었던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처럼 서사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다보니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특정 장면에 지나치게 긴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야기를 설명하는 요정 위스퍼가 가진 바람, 물, 대지의 속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각 속성에 맞게 배치된 무대장치(정사각형 물체 혹은 의자)가 뜻하는 바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 컨셉에 맞는 적절한 연출이 이뤄졌는지 의문과 아쉬움이 남게 됐다.
이솝이야기라는 대중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동화적인 상상력을 제시한 만큼, 이야기를 들려주는 위스퍼들의 속성이 의미하는 바와 그에 따른 무대 장치들의 의미가 조금 더 명확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대사로 서사 전개 흐름을 지연시키는 장면들을 축소하고, 런닝타임이 줄어들더라도 보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도입했다면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특정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나 노래 실력이 어색하게 느껴질 여지도 더욱 줄었을 것이다.
서사의 플롯 자체에는 큰 어색함이나 결함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그 안에 다층적인 함의나 은유를 찾아보긴 어려웠으며 초반부 전개 흐름이 늘어짐에 따라 상실되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보강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아름답고 따스한 이야기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동화같은 뮤지컬이라는 점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주 기대 관객이 아동극이 아니라면 좀 더 긴장감 있는 연출과 복잡한 서사 구조를 많이 활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솝 우화에 그리스 신화를 섞어 다층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자 노력한 시도와 소재 자체는 참신했으며 일부 조명 연출 등에서 뛰어나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다. 주어진 자원 내에서 어느 정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최소한 속도감만이라도 개선했다면 좀 더 좋은 뮤지컬로 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동화같은 따스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기존의 대중적인 이야기를 변형한 작품을 관람하길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추천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창작뮤지컬 이솝이야기는 2025년 3월 19일부터 2025년 6월 8일까지 서울 혜화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진행되며 가격은 6만 6천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