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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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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걸즈>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빈 수레가 요란하면 리듬 타기 좋은 법이다. 달그락- 달그락- 가득 찬 수레는 낼 수 없는 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요란한 소리를 들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꿈을 심어주기도 한다. <스윙걸즈>는 그런 빈 수레의 사랑스러움을 알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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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가 리듬 타기 좋다.


 

토모코와 친구들은 방과후 수업을 땡땡이칠 요량으로 관악부에 가입한다. 식중독으로 단체 입원한 관악부 대타로 들어간 그곳에서 색소폰과 트럼펫, 트럼본을 만나고 재즈와 스윙을 만난다. 처음에는 시간 때우기 용으로 생각했지만 점차 실력이 늘어가면서 재미를 붙이게 되고, 관악부가 돌아와 더 이상 연습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연주를 이어 나간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게 생긴 학생들은 두려울 게 없다. 좁디좁은 노래방에서 연습하다 쫓겨나고 악기를 사기 위해 버섯을 따다 엉겁결에 멧돼지를 잡는다. 헛웃음 날 정도로 허무맹랑한 장면들이지만 무언갈 좋아하기 시작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잘 알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그때가 가장 요란하다는 것을. 요란히도 내 삶을 온통 차지한다는 것을.

 

그런 의미로 이 영화의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은 신호등의 신호음에서 재즈를 발견한 장면이다. 이제 막 엇박자의 재즈를 시작한 이들의 귀에는 신호음도 재즈, 안내 호루라기도 재즈, 이불 터는 소리도 재즈, 탁구 소리도 재즈. 온 세상이 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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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빅 밴드 ‘스윙걸즈’를 결성한 멤버들은 스윙에 몰두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기에 바빴던 토모코와 요시에, 유이카는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강둑에서 혼자 연습에 매진한다. 엉망진창의 첫 합주를 하고 “우리 진짜 잘했어!”라며 행복해하는 ‘스윙걸즈’를 보며 웃음을 안 지을 이 있을까. 이들이 계속 연주하는 이유는 예술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경연대회에서 1등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그저 ‘스윙을 하기.’ 왜? 그게 좋으니까!

 

우에다 쇼지의 사진전에서는 이 상태를 ‘정신적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표현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돈과 명성을 추구하는 프로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만 몰두하며 순수한 기쁨을 추구할 수 있는 아마추어의 특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도전해 볼 만한 미지의 영역이 나타난다.

 

- 우에다 쇼지 사진전 中


 

완벽하지 못할까 봐 시작을 주저하는 현대인에게 20년 만에 돌아온 <스윙걸즈>는 말한다. 그건 아마추어의 특권이라고. 빈 수레가 리듬 타기 좋은 법이라고. 그러니 아는 것 하나 없이 서툰 그 귀한 시기를 쿵 짜작 즐기시라고.

 

 

 

꿈은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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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전염성이 강하다. 두 눈을 반짝이며 꿈을 좇는 사람을 목격하면 나도 덩달아 달려 나가고 싶어진다. 관악부가 단체로 입원을 한 후 새 밴드를 모집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온 세키구치 카오리는 존재감 없는 범생이에 어딘가 엉성한 학생이었다. 불 줄 아는 악기라곤 리코더뿐이었지만 유일하게 진심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조용한 진심은 스윙걸즈의 첫 ‘소리’가 된다. 관악기의 첫 번째 관문 ‘소리내기’에서부터 학생들은 난관에 부딪힌다.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집에 가려던 이들은 붙잡은 건 다름 아닌 카오리가 최초로 낸 ‘부우-’ 소리.

 

묵묵히 연습하던 카오리가 낸 소리는 ‘이걸 어떻게 해’를 단번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바꿨다. 그 희망을 따라 연습한 모두가 결국 ‘부우-’ 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꿈을 꾸는 사람은 빛난다. 가만히 있어도 그 자체로 반짝인다. 말을 많이 하지도 무리를 진두지휘하지도 않고 그저 꿈을 좇을 뿐인 카오리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이제 빅 밴드만큼이나 커다래진 소녀들의 꿈은 수학 교사 타다히코까지 전염시킨다. 만화적 요소가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바로 타다히코다. 리듬감이라곤 하나 없는 지루한 방과후 수업을 하는 인물. 알고 보니 마음속에 빛바랜 재즈의 꿈을 간직하고 있던 인물. 타다히코는 학생들이 빈 수레를 리드미컬하게 끌며 달려나가자 자신의 리듬도 다시금 꺼내보게 된다. 자신의 집을 연습실로 내어주고, 몰래 레슨을 받아 가며 아이들에게 재즈를 가르친다.

 

결국 악기 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초보라는 걸 들켜 스스로 음악회 지휘자의 자리에서 내려오지만, 음악회 때 무대와 가장 먼 문 앞에 서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본인만의 지휘를 했다. 소음 같은 수업을 할 때와 완전히 다른 얼굴로. 수업은 정확했지만 지루했고 지휘는 엉망이지만 빛났다. 아마 음악회가 끝나고도 선생님은 재즈를 계속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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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끝에서 혼자 걷던 카오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리의 중앙에서 웃으며 걸어 나간다. 꿈을 전염시킨 최초 감염자의 미소. 조용한 카오리가 요란하게 퍼뜨렸던 꿈은 스크린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전염된다. 영화가 끝나고 옆을 보니 함께 관람한 친언니가 휴대폰을 켜자마자 ‘색소폰 레슨’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영화관을 나와 오랫동안 걸으며 색소폰, 트럼펫의 가격과 동네의 레슨 장소를 찾아봤다.

 

오래전 피아노를 그만둔 언니는 조만간 재즈 피아노 레슨 상담을 받으러 간다. 조금은 요란하고, 그래서 리듬 타기 좋을 그 건반의 소리가 이번엔 누구를 전염시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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