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일하라! 걸어라! 살아남아라!

 

연극 <워크맨>이 2025년 3월에 단 10일간 관객들을 만나고 떠났다. 이태린 연출과 최양현 작가가 함께 준비한 이 작품은 미래 배경이지만 2025년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미래 현대인의 마음을 다루는 만큼 정신의학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받아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구상했다. 다른 SF 이야기들처럼 거리를 두고 그들을 바라보다 보면 인식하지 못한 현재의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35년 후, 2060년 서울이다. 기술이 발전했다. 인간의 노동이 거의 필요 없다. 주 3일 3시간 노동이다. 해가 떠 있을 때 출근해서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는 게 일상적이다. 일하는 시간이 개인의 시간보다 짧기 때문에 사람들은 퇴근 후의 시간을 지겹게 느끼기도 한다. 인간 대신 1인 1대로 상용화된 안드로이드 로봇이 일한다. 각 사람에게 맞는 필요로 움직인다.


날씨가 이상하다. 기후 온난화로 날씨가 수시로 국지적으로 바뀐다. 푸른 하늘에 해가 반짝이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내린다. 성인 인구의 1/3이 앓고 있는 우울장애에 좋지 않은 다소 변덕스러운 기상 변화이다. 정신적 아픔은 다양하다. 성인 ADHD, 만성 불면증, 경계성 신드롬, 노인 우울증, 유전성 중증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 그리고 습관성 알코올 의존증이다.


극의 제목인 ‘워크맨’은 인물들이 사용하는 앱 이름이자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캠페인의 이름이다. ‘워크’는 work(일)와 walk(걷기) 둘 다 해당하는 단어이다. 정신의학과 의사 ‘민준’이 ‘워크맨 운동’의 창시자이다. 사람들이 일하고 걷도록 독려하고 가끔은 워크맨에 입력한 환자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격 진료도 한다. 사람들은 앱을 통해 자신이 겪는 우울증을 확인하고 앱을 통해 전해지는 적절한 처방을 통해 건강해지길 바란다.

 

 

포스터_워크맨_web.jpg

 

 

등장인물은 총 8명이다. 정확하게는 7명의 사람과 1대의 로봇이다. ‘워크맨’ 앱에 가입하여 닉네임을 정하고 인사를 나누며 등장하는 연극 <워크맨> 속 인물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서로의 삶에 깊이 얽혀 있다. 걷고 일하는 사람들의 캠페인 ‘워크맨’과 가장 먼 인물들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그들을 중심으로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설린’과 ‘미연’과 ‘알마’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설린’의 아버지인 ‘민준’은 의료 보조 로봇 ‘알마’를 곁에 두어 그녀를 보호하지만, ‘설린’은 감시받는 기분을 느낀다. ‘설린’이 가장 의지하는 친구 ‘하루’는 로봇 AS기사로 일하면서 과거 키즈 유튜버였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로부터 잊히기를 원한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낯선 나라의 시민권을 사고자 한다. ‘설린’은 ‘하루’를 위해 아파트 재개발 조합장 ‘유리’가 가져온 서류에 서명해 거액을 얻으려 하지만, ‘하루’가 꿈꾸던 나라는 기후 변화로 사라지고 있다.


‘설린’은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복궁이 좋아서 문화유산 해설사로 일하고자 지원한다. 그곳에서 변함없는 경복궁과 달리 매일 새로운 관람객이 찾는 일을 하는 ‘도윤’을 만난다. 밝고 유쾌한 ‘도윤’은 워크맨 앱을 열심히 활용하며 매일 출근 인사를 올리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설린’과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워크맨 속 ‘설린’이 같은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한다.


높아진 기대 수명으로 ‘미연’은 103세까지 살며 많은 사람의 탄생과 죽음을 보았고 이제는 더 살고 싶지 않아서 안락사를 원한다. 3차까지 진행되는 심의 끝에 ‘민준’에게 1년 후부터 안락사 날짜를 정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는다. ‘유리’는 ‘미연’의 딸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보다 오히려 유리의 새 파트너이자 ‘미연’이 머무는 요양원의 심리상담사인 ‘하니’와 더 가깝게 지낸다. ‘미연’과 ‘하니’는 상담을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미연’은 언젠가 두 사람이 과거 자신이 ‘유리’와 살던 곳에서 함께 살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편, 모든 인물과 연결된 로봇 ‘알마’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를 모두 듣고 언제나 친절하게 반응하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감정 로그가 가득 쌓인다. 감정 로그가 쌓인 ‘알마’는 마치 사람처럼 분노한다. 결국 이러한 고장을 인식한 주인은 AS를 신청하고 ‘하루’가 이를 삭제하며 ‘알마’는 원래의 친절함으로 돌아간다. 관객들은 그 과정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과 감정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체컷_1.jpg

 

  

연극은 낯설지 않은 분위기를 띤다. 분명 2060년이라는데 그들의 행동과 아픔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우리보다 좋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치열하게 산다. 대학생 때 더 자신 있게 살아가기 위해 길게는 12년, 짧게는 3년의 힘겨운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렇게 힘들게 온 대학에서는 다시 취업을 위해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교내외 활동과 학점을 위한 공부로 멋진 직장을 갖고자 시간을 투자한다.


일을 구하고는 또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가 목적지인가, 숨 가쁘게 달려서 성취한 종착지인가 싶은 마음이 들 때 새로운 깃발은 더 먼 곳에 꽂혀 있는 날의 연속이다. 연극의 무대가 되는 2060년은 어떠한가. 고도화된 기술과 함께하는 그때는 덜 치열할까? 7인이 인물만 생각했을 때는 다행히 최대한 빨리 큰돈을 모아 한국을 떠나려는 ‘하루’를 제외하면 인물들에게 미래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마치 현재의 우리가 겪을 미래 같아서 슬프고 두려웠다. 기분 좋은 에너지로 인물들뿐 아니라 관객까지도 웃게 하는 ‘도윤’은 성인 ADHD를 겪으며 직장 내 평가를 나쁘게 받고 있었고, 아파트 재개발 조합장 ‘유리’는 자신이 독립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만성 불면증으로 기억력이 감퇴하는 증상을 겪고 있다.


‘하루’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튜버로 활동하며 세상에 얼굴이 알려졌고 유튜버를 그만둔 후에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안타까움을 줬던 것은 현대인의 마음 건강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워크맨 운동’의 창시자인 민준 또한 술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그 정도 아픔은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누구나 같이 살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괜찮아 보였던 그 아픔이 시간이 지나 '설린'과 '미연'처럼 죽음의 영역과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3인컷_2.jpg

 

 

‘설린’은 의과 대학에 진학할 만큼 수재이고, 홀로 사는 집이 있고, 소중한 친구 ‘하루’가 있으며,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도 자신을 걱정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아버지 ‘민준’이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인물들의 묘사만으로 감히 단계를 나누자면, 어쩌면 앞서 이야기한 인물들보다 더 아플지 모른다. 겉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자신과 같이 우울증을 앓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처럼 자주 생사의 경계에 자신을 놓아두는 인물이다.

 

 

“나에게는 쌍둥이와 같은 마음이 있어요. 왼쪽 쌍둥이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오른쪽 쌍둥이가 이제는 그만두라고 하네요. 둘은 늘 내 안에서 싸워요.”

 


연극 중 ‘설린’이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분명 지금까지의 인물 대사들과 결이 달랐다. 대사보다 실체를 가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 작품이 정신의학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현실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해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두 마음은 ‘설린’을 극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연’은 103세 생일을 맞이한다.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른다. 현재는 요양원에서 요양 로봇과 상담 심리사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다. 자신의 생일 케이크 위 촛불을 소원 빌고 불어보라는 ‘유리’와 ‘하니’의 말에 ‘미연’은 촛불은 예로부터 ‘생명의 등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내가 불면 생명의 꺼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민준’과의 안락사 심의에서는 요양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꽃은 감사와 애도를 상징하는 국화라는 말을 건네며 지속적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 살려는 모습이 징그럽다고 표현한다.

 

두 에피소드는 그저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지나가는 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잔상이 오래 남아있는 것은 ‘미연’의 말에 담긴 마음,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의지가 없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상 떠나는 날을 스스로 정한다는 생각이 현재의 나에게는 떠올리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103년이라는 세월이 내가 가닿을 수 없을 만큼 길기에 말을 아끼게 된다. 계산해보니 ‘미연’은 1957년에 태어났다. 현재 우리와 함께 중년의 시기를 보낸 인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인물들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두 발 대신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지만 ‘미연’도 워크맨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그는 얼마나 긴 시간 일했을지 생각해본다. 그제야 ‘미연’이 퇴근 후의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잠자는 시간 평균 7시간, 일하는 시간 3시간,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 넉넉하게 3시간으로 계산하면 남은 11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보내야 한다. 그 시간이 우리를 만드는 시간이고 성장시키는 시간일 것이다.

 

 

5인컷_3.jpg

 

 

주 3일 3시간 근무가 가능하게 만든 존재, ‘알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처음에는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않은 채 연극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마치 주인공처럼 역할이 드러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로봇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드는 것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순한 사무 업무부터 카메라 역할도 담당하고, 혼란스러운 기후에 아픈 마음이 더해져 하루가 멀게 발생하는 추락사에 수습을 맡은 존재도 ‘알마’와 같은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미래 시대의 로봇은 일자리와 관련해서 현대인들이 경계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사람이 하기에 어려운 일들을 해줄 수 있는 존재도 로봇이다. 연극 속 ‘알마’는 인물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느껴졌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일을 알아서 도와줄 수 있으며, 프로그램대로 행동하기 전에 주인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는 예의도 갖추었다. 개인의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인간과 로봇이 서로를 해하지 않기 위해 세워져야 할 규칙들이 지켜진다면 함께 살고 싶은 존재였다.

 

이러한 생각에는 감정 로그에 관해서 인간과 같은 면을 발견한 영향도 존재한다. 안드로이드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이기에 주인의 감정 데이터들을 쌓아두었다가 결국 고장나는 상황이 마치 감정 노동을 지속하며 정신적으로 아픔을 겪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AI를 사람들이 감정 쓰레기통으로 자주 사용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현실에서 사람에게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며 같이 화를 내길 원하고,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형체가 없는 컴퓨터 속 존재임에도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듣고 반응하고 있는데 정말 ‘알마’처럼 형체까지 갖는다면 그런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다.

 

‘알마’를 만든 건 인간이지만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알마’에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창조자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고 깨닫는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하고 AI가 발전하면 정말 ‘알마’와 함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매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수치가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그때의 우리도 연극처럼 여전히 위태로운 마음일지 모른다. 어떻게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일하고 걸으면 되는 게 맞을까?

 

* * *

 

<워크맨>은 7명과 1대의 모습을 통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미래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마음 건강을 회복하는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현실에서 만날 법한 인물들의 묘사는 우리와 닮아 있고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둘 이상이 함께인 장면에서는 어떤 마음 변화에 따른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불안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설린’도 ‘하루’ ‘도윤’ ‘민준’ ‘알마’와 함께일 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걷지 않고 일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함께 하는 시간의 능력과 소중함을 발견했다. ‘민준’이 시작한 워크맨이 계속 진행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걷고 일하는 것은 세상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고 그 앱 안에서 생겨난 관계들이 현실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모두 다른 삶과 아픔을 갖고 살지만,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가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지 소망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