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에 학창생활을 대부분 바친 이들에게 특히 미디어 속 일본 학교의 부활동은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다. 입시를 축으로 돌아가는 학창생활, 공부를 했던 기억보다도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곳에 친구들과 전심전력을 다해 보는 한 순간의 경험이야말로 그린 듯한 청춘의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기억보다도 친구들과 급식을 먹은 후 운동장을 돌며 떠들었던 일이나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일이 훨씬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일본 부활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면 경험해본 적 없는 설렘이 몸을 지배한다. 마음가짐마저 단속해야 했던 시절, 가까운 친구들마저 경쟁 상대로 돌렸던 그때, 기대했던 탄탄대로는 누구에게나 약속되지 않지만, 한 조각의 추억은 평생을 간다. 그런 청춘의 순간을 현재진행형으로 그려냄으로써 뭇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용기를 주는 것이 학원물의 저력이다.
<스윙걸즈>도 그러한 학원물의 한 공식을 따라가는, 익숙하기에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방학 때 보충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로 '답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은 어쩌다 시작하게 된 재즈 빅밴드에서 이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스윙'을 탐구하고 온몸으로 재즈를 한다. <스윙걸즈>는 때로는 계획하고 있는 미래와 고루했던 과거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삶에 끼어든 우연이 현재를 지배하기도 한다는 진리를 알려준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청춘의 불확실성이 영화에서는 스윙으로 승화된다. '스윙걸즈'와 키보드를 맡은 한 명의 소년은, 계산이 아니라 직관에 기대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기며 그 자리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새겨진다.
뛰는 심장, 그 박자도 스윙이니까
<스윙걸즈>는 초보자 재즈 세션으로 채워진 빅밴드를 시작하게 된 학생들의 서사를 다루는 만큼, '완벽'보다 '함께'를, '경쟁'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맞추고 있다. 노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이 가벼운 호승심과 우정을 시작으로 한 목표에 몰두하는 모습은 결과가 아닌 과정도 모든 것의 끝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전한 초짜에서 청소년 음악제에 나가기까지 성장하지만, 이들은 성취감보다도 어디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데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저 소소한 추억에 불과하다 할지 몰라도, 일생일대의 순간은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최선으로 살아가는 듯한 '스윙걸즈'는 영화 속에서 녹슨 금관 악기를 들고도 찬란하게 빛난다. 그것은 어디서든 스윙을 찾아내는 그들의 열정을 닮았다.
<스윙걸즈>가 이런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으로만 꽉 채워진 것은 아니다. 클리셰지만, <스윙걸즈>에서는 부활동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함께 성장한다. 과거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입시 상담을 했을 때는 물론, 지금도 꿈이나 목표를 말하면 쉽사리 응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어도 "할 수 있다", "잘 하고 있다"와 같은 말 한 번이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태도에 큰 힘을 얻는다. 그렇게 등을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같은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아군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선생 또한 자신을 믿고 긍정해주는 아이들에, 어디서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재즈에 대한 열정을 온전히 발산한다.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한다는 연대감, 동료애와 자신을 이끌어주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꿈이 꿈으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을 때 그 꿈을 진지하게 여겨주는 그 마음으로 하여금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꿈을 바라보는 마음은 쉽게 무시당하는 종류의 무언가지만, 그것을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 그 자체로 느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음은 분명 꽃을 피운다. <스윙걸즈>는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들에서 보았을 때, 재즈 세션으로 구성된 빅밴드를 만든다는 설정은 서사를 견인하는 힘이 되어준다. 학교의 공식 밴드부는 실력 있고 숙련된 학생들로 구성된, 조화를 중시하는 점잖은 밴드다. 새로이 결성된 '스윙걸즈' 역시 합주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함께 스윙을 하려는 자세다. 주인공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게 될 때 이들은비로소 한 밴드로 거듭난다. 이는 재즈가 요구하는 연주자의 자세이기도 하다. 어떤 자격을 얻거나 전문적인 연습 과정을 밟은 후가 아닌, 진짜 재즈를 하려는 마음이 모였을 때 비로소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학생들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스윙걸즈>는 학창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한풀이에 그치지 않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도 당장 스윙하라며 손을 내민다.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재즈 음악에 맞춰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이것도 스윙 아니야?'라는 영화 대사를 읊고 싶어진다. 스크린 안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을 보며 일단 부딪쳐보면 그것이 어떤 미래로든 데려가주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용기가 가슴에 깃들었다.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났던 경험과 꿈을 응원받았던 기억은 한 번일지라도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다. 무기력에 잠식되어 그 어느 과거의 순간, 혹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순간의 빛나는 자신을 찾고 싶다면, <스윙걸즈>가 기꺼이 망설이는 등을 밀어줄 것이다. 허접한 연주와 엇박자도 모이면 재즈가 되지 않느냐며 완전하고 완벽한 성공을 가정해 우리의 꿈을 부정하는 이들의 말은 잠깐 잊어도 좋다고. 건방지고 낭만적이지만, 그마저도 절실한 누군가를 위한 풀스윙의 응원을 '스윙걸즈'가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