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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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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el Duchamp, Fountain,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모두가 감탄하는 작품을 보고 ‘뭐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어떤 작품이 멋지게 느껴지지만, 정작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경험은? 나 역시 특정 작품을 감상할 때 그런 알쏭달쏭함을 자주 느꼈다. 예를 들어 변기를 소재로 한 마르셸 뒤샹의 ‘샘’, 바실리 칸딘스키의 ‘인상’, 파블로 피카소의 ‘기타 연주자’ 같은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막막했던 순간이 많았다. '감상'의 사전적 의미를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평가하지도 못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남들이 환희하며 감탄하는 작품들 앞에서 내 감상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감정에 무딘 걸까, 아니면 예술을 전공하면 더 세련된 감상평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미술 작품을 자신 있게 감상하지 못했다.


<감상의 심리학>을 읽으며, 과거의 내가 가졌던 그런 감상의 경험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미술사를 심도 있게 다루는 다른 미술 도서와 달리, 감상의 주체인 ‘사람’의 심리에 대한 과학적 경향성을 다룬다. 감상도 객관적 인지 처리 과정을 가지며, 이 과정에서 개인 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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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장 ‘감상의 과정’에서 저자는 도식을 통해 작품을 평가하는 과정을 정리한다. 처음 작품을 마주한 우리는 작품의 형태, 색, 스타일 등 작품의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지각 처리 과정을 진행한다. 약 10초 이상이 지나면 우리는 성별이나 나이와 같은 특성, 혹은 교육 수준이나 감상 경험 등 개인적 요소를 바탕으로 인지 처리 과정을 겪는다. 두 처리 과정의 상호작용과 감정, 신체적 상태가 결합하면 우리는 비로소 작품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사실, 그림은 정지해 있지만 그 안에는 색, 형태, 움직임, 균형, 질서, 관계 등 무수히 많은 요소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주의할 수는 없으며, 감상자가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림 감상은 수동적인 행위라기보다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 '감상의 심리학' p.82

 

 

결국 작품 감상에 대한 평가는 감상자 개인이 가진 사회 문화적 특성과 성격, 교육 수준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도출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감상이란 개인마다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러 심리학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작품 감상의 경향성에 관해 설명한다. 덕분에 독자는 평소 자신이 해오던 작품 평가 방식의 과정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개인이 좋아하는 특정한 스타일의 작품이 있다면, 왜 이 작품이나 이 화풍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최근 풍경화나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에 흥미를 느낀 나는, 사람들이 풍경화를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는 ‘5장: 풍경화와 생태적 감정’ 부분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풍경화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갇혀있는 공간에서 오래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풍경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고 설명한다.


빽빽한 건물이 즐비한 도심을 답답하게 느끼는 내가 풍경화를 보고 일종의 해방감을 얻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개인의 모든 선호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때로는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데, 심리학은 그런 모호한 감각조차 통계로 풀어내는 학문이라는 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한 권의 책에 풍부하게 담겨있다. 어떤 사람들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더 좋아하는지, 몬드리안의 작품은 어떤 시각적 리듬을 담고 있는지, 대칭과 비대칭은 어떤 식으로 역동성을 만드는 지 등.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 결과가 나와서, 책을 손에서 쉽게 놓을 수가 없다.


또 이 책에는 실제 작품 감상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담겨 있으며, 대부분의 작품이 선명한 실사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감상 초심자인 나는 이전까지 작품의 ‘형태’를 찾으려 애썼지만, 1장에서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을 보며 처음으로 형태가 아닌 ‘질감’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뒤이어 소개되는 '맷돌질하는 여인'은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사진으로만 봐도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고,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설명이 내게는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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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책에 별다른 필기를 하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만큼은 작품 사진 아래에 나만의 짧은 감상을 적어보았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특징이나 관련된 개인적 일화를 메모하며 읽으니, 그냥 작품을 슬쩍 보고 지나갔던 과거의 감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감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가며 결국 인간은 왜 감상하는지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작품을 감상하는가? 우리는 작품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감각들을 깨운다. 그런 감각은 우리 안에서 점점 자라나고,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큰 눈으로 바라보는 토대를 만든다.


작품과 예술가에 관한 배경지식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감상하는 건 그 결괏값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미술사를 다루는 일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감상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감상의 주체인 ‘사람’에 대한 연구도 활발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AI는 작품을 창작할 순 있어도, 감상할 순 없으니 말이다.

 

 

예술에 무딘 사람이란 없다. 다만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 '감상의 심리학'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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