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식]은 가상의 공간 구미시를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 형식의 연극이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란, 웃음을 통해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드라마의 한 형식이다.
그렇다면 [구미식]은 어떤 대상에게 환멸과 냉소를 보내고 있을까?
연극은 극도로 보수적인 가상의 지방도시, 구미시를 배경으로 한다.
퀴어이면서, 동시에 약물중독자인 톰 윌리엄스가 새마을운동기념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모 지도자의 동상을 마주하고, 지도자의 동상은 동화 [행복한 왕자]처럼 지역민들과 톰 윌리엄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비와 사파이어가 박힌 호화스러운 동상은 어려운 형편의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보석을 떼어주고, 약물중독자인 톰 윌리엄스에게는 그가 원하는 마약이 있는 위치를 알려준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준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지역민들의 톰 윌리엄스의 상황이 더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톰 윌리엄스의 경우, 연극 후반부로 갈수록 동상이 준 마약 때문에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된다.
당시에는 분명 필요한 것을 준 것 같아 보였음에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저들에게 필요한 것을 해준 것인가? 아픈 자식을 둔 어머니에게는 루비가 아닌 병원비를 낮출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라거나, 쉽게 아이를 들쳐매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이런 것들이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도!)하는 생각이 들었다.
찜찜한 기분의 이유는 공연의 끄트머리로 갈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톰 윌리엄스의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폭력을 가한 선생님은 '모두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자란 아이들 중 몇몇은 자신을 찾아와 감사의 인사까지 전한다고 한다며 톰 윌리엄스에게도 그러한 목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를 묻는다. 정작 톰 윌리엄스에게는 그런 어린 시절이 아주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이에 더해, 극은 톰 윌리엄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가의 이모할머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끝맺어진다. 작가의 이모할머니는 평생 국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정작 호적에는 올려지지조차 못했다. 자신들을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국가에게조차 배제된 이들에게, 국가로부터의 폭력과 세뇌는 많은 것을 남기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작가의 이모할머니, 구미시, 나아가 현실의 사람들 또한 그렇다. 국가와 독재자는 씻을 수 없는 기억과 허울뿐인 동상 등 많은 것을 남겼지만, 그들이 실로 필요한 것들은 남겨주지 않았다.
국가로부터의 폭력은 개인에게 필요한 그 무엇도 남기지 않는 대신, 그들이 힘을 존속하는 데에 필요한 것만을 남겨둔다. 가상의 국가에서, 나아가 현실까지 관통하는 연극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이 이야기를 현재까지 곱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놓고 웃다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생각들을 안겨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