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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육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


 

근래 들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체 경쟁'을 극도로 부각하는 장면이 부쩍 늘어났다. 단순히 연예인들이 체력 테스트를 하던 가벼운 예능을 지나 전문가급 운동선수나 특수부대 출신이 모여 극한의 한계를 겨루는 형식까지 등장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피지컬: 100 시즌2-언더그라운드>(이하 <피지컬 100>)이다.

 

이 프로그램은 "누가 더 강한가"라는 매우 원초적인 질문을 중심으로 개인의 신체 능력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서바이벌 형식으로 그려낸다. 마치 새로운 스포츠 경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지만 사실 기존 스포츠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 글에서는 '게임이 된 육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피지컬 100>이 보여주는 스포츠적 미학과,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리얼리티 쇼로서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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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된 육체' – <피지컬 100>의 스포츠적 미학


 

스포츠라 하면 승부와 기록, 기술과 전략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동시에 스포츠에는 미학적 측면이 존재한다. 예컨대 축구 경기를 볼 때, 단순히 골의 득실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흐름을 감상한다. 농구의 패스와 드리블, 골프의 완벽한 스윙도 모두 정교한 신체 감각에서 비롯되는 예술적 장면이다.

 

<피지컬 100>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들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단순한 근육 크기나 순간적인 힘 자랑이 아니라 규칙과 미션에 맞춰 끊임없이 전략을 세우고 최적의 움직임을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잘 훈련된 몸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본능적인 경외감을 일으키고 순간의 집중과 긴장감은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원래 스포츠는 사냥이나 전쟁 같은 실용적 기술에서 유래했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도 여전히 '승리'가 목표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경기 자체가 관객을 위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TV 중계와 각종 이벤트, 광고 스폰서가 가세하면서 스포츠는 이미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확장된 지 오래다.

 

<피지컬 100>은 여기에 극적인 편집 기법과 개인 서사를 결합한다. 한 번의 미션을 수행하기 전, 출연자들의 각오나 긴장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미션 후에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 변화를 클로즈업해 전달한다. 그리하여 시청자는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많이 들 수 있는가?'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이 이번 라운드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어떤 심리전이 오갔는지'까지 따라가며 몰입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몸 자체를 하나의 상품화된 콘텐츠'로 보는 흐름이 강하다. SNS 속 피트니스 모델이나 바디프로필 열풍에서도 볼 수 있듯, 탄탄한 체격이나 근육질 몸매는 그 자체로 주목을 끄는 매력 포인트다. <피지컬 100>은 이것을 극단으로 몰아넣는다. 이미 뛰어난 체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서로 경쟁을 펼치면서 육체를 공연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출연자들은 단지 자신의 몸을 쓰는 '기술자'가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 속에서 의지를 드러내고 고통을 견디는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인간 대 인간'의 서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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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포츠와의 차이 – <피지컬 100>은 스포츠인가, 예능인가?


 

흔히 스포츠라 하면 '자연스러운 신체 경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규칙을 정교화하고 장비나 경기장 규격을 표준화해 왔다. 이는 사실상 매우 인위적인 환경이다. 자연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달리기를 하거나 사냥을 하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셈이다.

 

<피지컬 100>은 이러한 '인위적 구조'를 더 과감하게 드러낸다. 매 라운드마다 새로운 규칙이 주어지고 출연자들은 해당 규칙에 최적화된 신체 움직임과 전략을 즉석에서 만들어야 한다. 어떤 라운드에서는 몸이 작은 이들이 유리하고 또 다른 라운드에서는 덩치가 커야만 버틸 수 있다. 이처럼 상황마다 극적으로 달라지는 유불리가 늘 존재하기에 드라마적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다.


2000년대 예능 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은 연예인들이 장애물을 넘거나 미끄러지면서 승패를 겨루는 모습에 주안점을 두었다. 시청자는 출연자들이 엉뚱하게 넘어지고 당황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얻었다. 말하자면 가벼운 '몸개그' 중심의 스포츠 예능이었다.

 

반면 <피지컬 100>은 국가대표, 특수부대 출신, 소방관 등 실제로 극한의 훈련을 거친 프로페셔널이 주류를 이룬다. 몸개그보다는 진짜 승부가 중요하고, 이들이 짓는 표정과 숨소리, 땀방울 하나까지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 차이 때문에 <피지컬 100>을 볼 때의 감정선은 웃음이 아닌 서바이벌을 지켜보는 진지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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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은 일정 부분 스포츠적 규칙을 차용하지만, 리얼리티 쇼 특유의 서사와 연출이 결합된 형태다. 기존 스포츠 경기에서는 규칙이 이미 정형화되어 있고 선수들은 그 규칙 아래에서 경쟁한다. 그러나 <피지컬 100>에서는 매 라운드 예측 불가능한 미션이 등장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매번 새로운 호기심과 서사를 제공한다.

 

이 점에서 <피지컬 100>은 '결정된 규칙 안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 제시된 규칙에 기민하게 대응해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결국 관점에 따라 '진짜 스포츠'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무한 경쟁 본능과 극한의 신체 퍼포먼스는 확실히 스포츠의 본질적 매력을 끌어안고 있다.

 

 

 

사람들은 왜 스포츠(또는 <피지컬 100> 같은 서바이벌)를 좋아할까?


 

인간이 육체 경쟁을 즐기는 이유에는 진화론적 설명이 깔려 있다. 원시 시절, 사냥이나 부족 간 전투에서 빠르게 달리고 강하게 치는 능력은 곧 생존을 의미했다. 현대에 이르러 생존 환경은 달라졌지만 경쟁을 바라보는 본능적 재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스포츠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런 본능을 오락의 형태로 안전하게 체험하도록 만들어준다.


현대 사회의 경쟁은 모호하고 복잡하게 마무리될 때가 많다. 그러나 스포츠나 서바이벌 쇼는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에는 단 한 명이 남게 되고 그 과정에서 대다수는 탈락한다. 이 단순하고 극적인 결말은 시청자에게 분명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즉, "누가 더 강한가?"라는 단순 명료한 물음에는 명확한 답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가진 매력이자 시청자들이 극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스포츠나 <피지컬 100>에서 시청자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경기에서 땀 흘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며, 한계를 시험하는 장면을 보며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한다.

 

이런 대리 경험은 각종 인터뷰나 편집된 드라마틱한 서사를 통해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극한으로 내몰린 출연자들이 느끼는 두려움, 좌절, 승리의 순간은 곧 시청자의 감정이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지컬 100>은 웰메이드(well-made)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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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된 육체'가 던지는 질문


 

<피지컬 100>은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규칙 속에서 신체가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동시에 스포츠적 긴장감과 리얼리티 쇼적 서사를 결합하여, '육체'가 어떻게 콘텐츠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곧 '게임이 된 육체'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구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늘날 스포츠는 이미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 깊이 들어가 있고 사람들은 경쟁의 본능을 무대화해 즐긴다. <피지컬 100>은 이 과정을 더 드라마틱하게 편집하고 서사화함으로써 우리가 '진짜 스포츠'에서 느끼던 열광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진짜 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는지 혹은 단순히 '리얼리티 쇼'일 뿐인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명백한 사실은 <피지컬 100>이 스포츠가 가진 미학적 가치와 엔터테인먼트가 요구하는 극적 연출을 결합해 현재 대중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누가 더 강한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가 '육체'와 '경쟁'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있는 신체'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감각과 흥행 요소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피지컬 100>이 보여주는 '게임이 된 육체'는 스포츠의 본능적 매력, 경쟁의 쾌감, 예능의 서사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극적인 무대를 통해 오늘날 대중은 '육체'가 어디까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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