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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가 독립·예술영화로서 큰 흥행을 이뤄냈다.

 

“서브스턴스”는 노화로 인해 하락세를 겪고 있는 여성 TV 진행자 스파크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외모 강박, 노화에 대한 두려움, 여성의 사회적 위치 등의 주제를 다루는데, 특히 바디 호러, 즉 신체를 통해 전달되는 공포감이 특징적이다. 여성의 신체성은 사회문화적 맥락과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다뤄져 왔다.

 

3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되는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역시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 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살펴보는 전시다. 아시아 11개국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 130여점을 6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선보인다.

 

1부 ‘삶을 안무하라’는 복잡다단했던 근현대 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신체에 새겨진 삶을 다루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데미츠 마코의 〈가정주부의 어느날〉(1977)은 한 가정주부의 일상을 화면을 통해 비춘다. 그런데 주부가 어딜가든 TV속 눈이 계속 따라다니며 지켜본다. 집이라는 사적이고 안정된 공간 속에서도 주부는 감시를 받으며 가사 노동에 임한다. 그럼에도 유급 노동과 달리 인식되지 않거나 은폐되어 온 점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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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예술가 아라마이아니의 〈A부터 Z까지의 제안들〉(1996)은 작가의 퍼포먼스 기록을 담은 비디오로 전시되었다.

 

작가는 포르노그래피 사진 따위를 화장하듯 불태운다. 그리고선 총구가 중심으로 향한 총들이 여럿 놓인 흰 천 가운데에 눕는다. 사진은 수전 손택이 그의 책 『사진에 관하여』에서 설명하듯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특히, 피사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포르노그래피일 것이다. 그러한 사진의 폭력성은 총기와 유비되곤 한다. 둘 다 모두 대상을 조준하며 셔터 혹은 방아쇠를 누르거나 당긴다.

 

2부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에서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회 규범과 문화적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여기엔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사고를 흔들고자 했던 작품들이 포함된다. 이토 타리의 〈내가 내가 되기〉(1998)는 그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퍼포먼스다. 작가는 몸을 격렬히 흔들며 옷을 벗고 강박증에 시달리듯 거대한 라텍스 질을 한 겹씩 벗겨낸다. 사회적으로 억압되어온 욕망을 행위와 안무를 통해 드러내는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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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아의 〈픽세이션 박스〉(2007)은 얼핏 보면 아름다운 모습의 수족관 모형같다.

 

하지만 이는 오브제에 오줌 결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랗게 반짝거리는 산호초 같은 구조물이 굉장히 사적이면서 오물로 여겨지는 신체 분비물임을 알아차린 뒤엔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미와 추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지저분해 감추어야 했던 지극히 신체적인 물질을 통해 던진다.

 

3부 ‘신체·(여)신·우주론’에서는 아시아 각국 고유의 민간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을 작품의 주제 및 표현 대상으로 삼거나, 우주론의 관점에서 신체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바라보았던 일련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바티 커의 〈그리고 자비로운 자가 잠든 내내〉(2008)는 인도 여신인 친나마스타(Chinnamasta)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친나마스타의 본래 도상은 목이 절단된 채로 자신의 머리와 칼을 각각 손에 들고, 성교하는 남녀 위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작가는 이 여신 도상에게 잘려진 머리 대신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을, 다른 한 손에는 칼 대신 찻잔을 쥐여줬다. 인류의 먼 조상의 두개골은 우리에게 죽음 혹은 그것의 공포와 끊임없는 삶의 순환을 암시하는 한편, 찻잔은 여신이 신화 속 이야기에서 나와 현실에 존재하게끔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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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거리 퍼포먼스’에선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며 도심의 거리와 일상 속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던 미술가들의 기록을, 5부 ‘반복의 몸짓‒신체·사물·언어’는 반복성을 통해 신체를 둘러싼 제도, 환경, 집단의 기억을 다시 보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6부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은 정신/육체, 인간/자연, 주체/객체 등의 이분법적 위계를 넘어서고자 한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는 그동안 서구 여성 미술가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60년대 이후의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동시대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신체에 새겨진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사회, 경제, 정치 각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와 함께 혼란을 겪었던 시기의 작업을 신체성의 관점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특히, 단순히 젠더 갈등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다양한 이분법적 위계 질서에 틈을 내는 작업들은 여전히 그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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