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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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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년, 연극을 보고 비평을 써야할 일이 있었다. 비록 비평을 이유로 찾은 극장이었으나 가장 좋았던 연극을 꼽으라면 이때 본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 돌파구의 <고목>은 유독 추울 때나 쓸쓸한 맘이 들 때 뜨겁고도 멋진 극으로 생각이 난다.


<고목>은 1947년 극작가 함세덕이 발표한 3막극으로,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남한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함세덕은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국민연극 단체에서 활발히 극작가로 활동하지만, 해방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발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좌익 극단 조직, 좌익 문예 활동 등을 펼친다. <고목>은 그가 해방 이후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마을 지주 ‘박거복’의 집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의 용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사상, 세대, 계급 간 갈등과 그 해소 과정을 그려낸다. 이러한 플롯 사이로 남북 분단, 전염병과 자연재해를 경험한 후 식민 지배의 후유증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몸살을 앓던 당시 한반도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작품 발표 시기를 전후로 남한은 미국의 신탁 통치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진영으로 지목되어 검거되거나 남한의 단독정부 건립을 반대하던 제주 시민이 대거 학살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야기의 끝에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어렵게 살아가는 여성, 소작농, 지식인 등이 한 데 뭉쳐 나무를 쓰러뜨리는 결말을 맺는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극이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두가 공평하게 살아가는 국가 건설과 계급을 철폐하기 위한 민족의 단결에 대한 희망과 염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목>의 복잡다단한 인물 간 관계와 이해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인물들의 태도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의 중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가장 많은 상징을 내포한 오브제인 은행나무는 그 의미가 사건의 전개와 각 인물의 욕망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한다. 이는 즉 은행나무의 변화를 통해 텍스트 이상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중 은행나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정치사회학적인 의미를 확장하는 중요한 장치다. 때문에 각 인물의 관계와 갈등, 은행나무의 활용에 대한 입장, 인물의 행동이 교차하며 은행나무의 의미 또한 함께 변화하고 있다.

 

 

 

굳건해 보이던 고목을 쓰러뜨린다는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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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서 은행나무는 재산 혹은 재원을 넘어 공공의 가치를 지닌 물질로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극이 시작되고, 거복의 처남인 ‘영팔’과 청년단 위원장인 ‘하동정’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팔은 미국인의 종 노릇을 하다 통역에 두각을 보여 출세한 돌쇠의 딸 혼사에 가구를 짜러 은행나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거복은 이에 “그 모리배 딸년 혼인 장롱을 만들기 위해 날더러 대중정 미소의 목숨보다도 귀한 저 나무를 배란 말이냐?”라고 거절하며 계급 의식을 드러낸다. 이어 거복은 은행나무는 할아버님의 유지가 담긴 유산이며, 함부로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거복의 태도를 보았을 때, 은행나무는 기득권이 세습한 재산이자 사적 소유물로 비춰진다.


거복이 봉건 세력의 대표나 다름 없는 지주임을 감안하면 은행나무는 곧 부, 전통, 신분주의와 동일시된다. 이어 청년단 위원장 하동정은 은행나무를 공익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소수에게 집중된 자원의 분배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주장한다. 그는 수재민을 위한 기부를 요청하면서 거복이 과거 자진해서 일본 군에 나무를 공출하려 했던 민족 반역자에 가까운 행보를 지적한다.

 

동정은 국가를 위해 나무를 써야 한다는 거복의 말에 이를 근거로 뼈아픈 비판의 대사를 던지지만, 거복은 이를 해명하며 되려 “삼천리 우리 금수강산에 사는 삼천만 대한 민족 전부를 위해서 쓰구 싶단 말이오.”라고 말한다. 동정은 놀라 되묻는데, 이것이 곧 마을을 방문할 ‘오 각하’의 별채에 들일 화로, 바둑판, 장기를 만들어 헌납하기 위함임이 드러나며 위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은행나무는 여기서 새 시대의 권력자에게 봉사하고 개인의 잇속을 챙기려는 봉건 자산가의 욕망이자 욕망을 실현할 수단이 된다. 반면, 동정은 거복의 욕망을 덧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은행나무가 새 시대를 세울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립과 연결될 때 은행나무는 사적 재산 자체를 넘어 그 이상의 이데올로기적 상징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에 대한 발화로 시작해 토지를 인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초국의 딸 진이, 소작농 막봉이와 거복의 대화에서 그의 꿈은 허상임을 보여준다.


이는 현금과 토지 분배 등의 안건에 무지한 거복이 현실 감각이 떨어짐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전복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의 변화가 이동할 것이라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행나무는 여기서 공공의 가치를 지닌 재원, 시대의 변화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는 정신적 장으로 치환된다. 나아가 나무를 베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이 은행나무가 최종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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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막에서 은행나무는 농지와 한반도 그 자체의 의미로 확장된다. 극에서 은행나무는 무대 앞, 검은 흙이 봉분처럼 쌓인 형태로 구현된다. 1막에서 줄곧 나무로 기능했던 흙이 2막에 들어오면서 그 직관적인 모습처럼 땅으로 활용된다.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애국당 윤군수와 곽목사는 이 흙을 밟기도, 입에 넣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의 행동은 웃음을 자아내거나 이들을 풍자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의 뿌리와 근간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연출해 관객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은행나무가 흙으로 변화하면서, 그 의미가 땅으로 확장되었음은 나무가 오백 년 되었다는 거복의 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역사가 500년을 조금 넘는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거복의 조부가 남긴 유산으로서 고목나무의 의미는 힘을 잃고 한반도와 은행나무는 동일시되는 것이다.


3막으로 들어서면 이러한 한반도의 이미지는 농지라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윤곽이 잡히다 다시 한반도의 이미지로 회귀한다. 오 각하의 연설에 다녀간 막봉이, 거복의 처, 진이의 토지 무상 분배에 대한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조선인보다는 미국인에 가까운 오 각하의 모습에 실망한 거복의 딸 수국과 거복의 노모가 거복에게 등을 돌리는 사건 이후 은행나무의 운명은 결정된다. 이들이 거복을 재판하듯 둘러싸고 거복의 염원을 완전히 좌절시킨 것이다. 결말은 이렇게 거복이 자신에게 쓸모가 없어진 은행나무를 소시민들에게 내어줌으로써 토지 분배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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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진이가 나서 나무 뿌리 근처에 굼뱅이가 우굴거린다며, 필경 나무 속도 썩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통해 거복의 명분과는 괴리되는 검은 욕망을 비유적으로 비판한다. 종합해 보면, 나무를 베는 행위는 거복이 두려워하던 부의 재분배이자, 지주인 거복의 주된 재산인 토지를 분배하는 과정을 빗댄다. 나무는 초국이 나무 베기를 거부해서, 나무를 베다 느닷없이 들리는 폭발음에 놀라 작업을 중단해서, 기부증서를 쓰러 간 노모의 변심 등등 각종 이유를 대며 거복의 욕망 앞에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랬던 은행 나무가 작품의 막바지에 소시민의 손에 쓰러짐으로써 앞으로 세상을 바꿀 이는 기득권이 아닌 이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곧 작품 내내 청년단이 부르짖던 자주 독립이 실현되는 첫 걸음의 순간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국가를 이루는 국민이 영토를 스스로 되찾는 이상적인 과정을 통해 고목나무는 한반도 그 자체로 모습을 잡아간다.


이렇게 <고목>의 은행나무는 기득권의 욕망과 평범한 사람들의 손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을 이룩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충돌하는 지점의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더불어 사람에게 그 운명을 맡기는 ‘영토’로서 작품의 메시지와 의미를 결말에서 완전히 봉합하는 작품의 축이라 할 수 있다.


은행나무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가장 여실히 느꼈던 것은, <고목>이 과거 한국의 구체적인 시대 상황과 구체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작품이지만, 사회의 염증, 구시대의 고목을 뿌리 뽑고자 하는 염원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민중의 심장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응어리는 무엇인가.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을 지금 당장 들여다볼 때라고, 2024년 극단 돌파구의 <고목>은 말하고 있었다.

 


* 이미지 출처: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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