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 사람에게는 한 명 분의 인생이 있다 - 여신님이 보고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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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처음 봤던 것은 2022년 10월에 진행되었던 온라인 중계에서였다. 이제 막 뮤지컬에 입문했던 나에게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명성은 끝도 없이 들려왔고, 마침 온라인 중계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나는 고민도 없이 결제를 했다. 집에는 빔프로젝터가 있었고, 캐스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와 같은 역할을 맡으며 호평을 받아 평소 눈 여겨보던 배우가 있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비록 빔프로젝터로 집에서 혼자 보는 뮤지컬이었지만 몇 번을 울었는지. 연우 극장에서 올려준 온라인 중계 캐스팅 보드를 화면에 띄워놓고 뮤지컬을 보긴 전 인증샷까지 찍었던 내 사진과 극을 본 후 찍었던 인증샷을 비교해 보면 그 감동이 얼마나 심했는지,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에서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뚜렷한 전후 변화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때 나는 꼭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초반 넘버 [누구를 위해]였다. 거센 파도를 마주하고 거칠게 흔들리는 배 안의 급박한 상황을 묘사한 넘버 [누구를 위해]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가장 첫 번째 넘버로, 6명의 배우들이 실감 나는 표정 연기와 호흡이 딱 딱 맞는 행동 묘사를 통해 실제 요동치는 배 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화면 너머로 보면서도 실제로 내가 배 안에서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낄 정도였으니, 실제로 보면 얼마나 경이롭고 즐거울지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이나 크게 자리 잡았다.
그렇게 2025년, 나는 드디어 무대로 향해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관람하게 된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 전쟁 당시의 국군과 북한군의 유쾌하지 못한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국군 대위 한영범과 부하 신석구는 북한군 4명(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게 된다. 전쟁 최전선에 나갈지, 배를 탈지에 대해 고르라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티를 팍팍 내며 귀찮음을 감추지 않고 포로들을 배에 태운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기상악화로 인해 거친 파도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송선은 고장 나버리고, 포로들은 어느새 포박을 풀고 국군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혼란이 가득한 배는 거센 파도에게 잡아먹히게 되고, 그렇게 여섯 명의 병사들은 함께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
이 넷 중 유일하게 이송선을 수리할 수 있는 병사 단 한 명. 북한군 류순호다. 그러나 류순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사리분별이 온전하지 못하게 된 상황. 이도 저도 못하는 나머지 다섯 명의 병사들이 괴로워하며 점차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영범은 잔머리를 굴려 순호를 달래주기 위해 '여신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여신님의 이야기를 들은 순호가 점차 안정을 되찾으며 배를 고칠 기미를 보이자 다른 다섯은 배를 고치고 무인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심하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펼치게 된다.
국군과 인민군, 적으로 만나 함께 무인도에 갇히게 된 최악의 상황은 피로 가득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극을 보는 내내 웃음소리는 여러 번 극장을 가득 채우게 된다.
국군과 북한군의 경계를 허물다, 캐릭터 이창섭
웃음의 핵심에 서있는 인물은 북한군 이창섭 상위에 대해 조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실 이창섭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그 악명이 얼마나 자자한지 포로로 이송될 때도 홀로 구속복을 입고 있을 정도다. 다른 앳되어 보이는 군인들과는 다르게 얼굴에는 어느 정도의 연륜도 묻어나고, 그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알려주듯 얼굴에는 살벌한 상처가 크게 새겨져 있다. 입은 거칠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크게 윽박지르고 화를 내는 장면의 대부분은 그의 몫이다. 덕분에 극의 시작, 같은 북한군을 구타하는 그의 모습에 순간 극장은 살벌하게 얼어붙을 정도다.
그런 그가 웃음의 핵심에 서있다니,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까? 아니, 오히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가 웃음의 핵심에 서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살벌하게 관람객들에게 첫인상을 각인시킨 그가 바로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의 시작점을 알리는 계기다. 비록 '여신님'의 존재를 떠올린 것은 한영범이지만, 류순호 외에도 북한군이 세 명이나 있는 상황이다. 동화 같은 여신님 이야기를 순호에게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북한군을 설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과정에서 국군 한영범과 신석구는 이창섭을 꼬드기게 된다. 둘의 꼬드김 속에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에 말려드는 그의 의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박수를 치고 아첨을 하는 한영범과 신석구의 가운데에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함께 여신님을 외치며 춤을 추고, 앞장서서 여신님의 존재를 류순호에게 부각 시키는 그의 의외의 모습은 순식간에 관람객의 마음을 녹여낸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이창섭에 대한 관람객의 마음만을 녹여낸 것뿐만 아니라, 북한군 전체를 향한 경계심 내지 편견을 허무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아무리 우리가 '유쾌한 극이다' 생각하고 관람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상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주 조금이나마 북한군에게 적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이고, 우리는 한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이 존재하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배경 속에서 포로로 삼고, 싸움을 하는 방식으로 극이 시작한 이상 결국 극은 관람객들에게 북한군에 대한 마음의 경계심을 허물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할 계기가 필요하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그런 설득의 효과적인 아이템으로 이창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 누구보다도 사나운 존재로 표현하고, 그를 가장 많이 무너트리면서 말이다.
한 사람에게는 한 명 분의 인생이 있다 - 마음 속 여신님을 찾아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싫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세상 모든 것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많은 그 사람만의 역사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우리는 항상 간과하고 살아간다. 쉽게 말을 꺼내고, 쉽게 상처를 입힌다. 내 앞에 있는 단편적인 형상만을 바라보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각자의 '여신님'을 통해 그 사실을 우리에게 짚어준다.
변주화는 말 그대로 '군인답지 않은 군인'이다. 순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미루어 본다면, 다른 북한 군인 이창섭, 조동현 사이에서 유독 밝게 눈에 띄는 인물이다. 항상 헤실헤실 웃고, 그에게는 분명 적군일 한영범에게도 처음부터 마냥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아 곤란해하면서도 조금씩 챙겨준다. 여신님 대작전도 빠르게 받아들여 여신님을 반기며, 오히려 여신님의 백일잔치를 열자며 신나하고, 다른 이들에게 춤까지 가르치려고 할 정도다. 그의 해맑음에 누군가는 분명 '속이 없다'는 말을 하리라.
하지만 극을 계속 볼수록 우리는 그의 여신님을 마주하며 그의 섬세함의 밑바탕이 되는 과거를 알게 된다. '기생오라비'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여동생은 기생이고 나는 그 오빠니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여동생이 기생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웃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고, 여동생에게 배운 춤 동작을 무인도의 다른 군인들에게 하나씩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그의 깊은 속내를. 여신님의 백일잔치를 위한다는 그의 춤은 분명 사실 멀리서 그의 안위를 걱정할 여동생에게 바치는 것이었으리라.
이창섭 또한 마찬가지다. 욕설, 폭력을 일삼으며 악명을 쌓아온 그의 마음속 품어진 여신님은 다름 아닌 그의 늙은 어머니다. 항상 강한 척, 굳건한 척 어깨를 펴고 살지만 결국 그는 그만의 여신님ㅡ노모를 속으로 마주하며 '나는 이런 내가 싫다'라고 고백한다. 오직 그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몸도 성치 않은 노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북으로 돌아가고자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게 되었다는 그의 속마음을 알고 나면, 우리는 절대 단순히 '그래도 그는 나쁘다'라고 그를 생각하지 못하리라.
한 사람에게는 한 명 분의 인생이 있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그 한 명 분의 인생이 갖고 있는 입체성을 '여신님'을 통해 들여다본다.
12년이 지나도 앞으로가 기대 되는 극
오랜 시간 사랑받으며 중소극장의 신화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낡지 않는 스토리와 늙지 않는 감동, 해지지 않은 웃음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12년이 지났으면, 15년을 기대하게 된다. 15년이 지나면 20년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보며 수많은 여신님을 마주하고, 나만의 여신님까지 찾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기대할 것이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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