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피드백 모임] 쓰는 사람

혼자 쓰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글 입력 2025.01.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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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모임 신청 소식을 기다리던 지난여름. 나는 다른 글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글을 나누는 기쁨을 막 알아차린 터였다. 처음 경험한 달콤한 맛이 좋아서 사탕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의 마음처럼, 쓰는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아트인사이트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에 진심을 담는 사람들이 모인 플랫폼이었다. 이곳에서는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어색하고 망설여지는 대문자 I인데도 모임 신청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했다.

 

당시는 나의 글쓰기가 추구하는 방향이 변화할 것 같다고 예감하던 시기였다. 여태까지 쓴 관념적인 글과는 다른 글을 쓰고 싶다, 쓰고 싶은 글의 장르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하는 직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새롭게 써볼 글들에 대한 피드백을 이번 모임을 통해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아는 관념의 깊은 우물에서 막 벗어난 글, 처음이라 어색한 걸음걸이로 쓰일 에세이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애매한 장르의 글. 그러기 위해선 기존에 아트인사이트에 작성해 둔 글이 아닌, 매달 새롭게 쓴 글을 모임에 가져가야 했다. 그러니 이 변화의 예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한 글쓰기를 꾸준히 해낼 원동력을 곁에 둔 셈이었다. 막 변화가 일어나려는, 어떤 모양이든 돼보려 하고 또 될 수 있는, 그릇에서 막 벗어난 물 한 줌 같은 마음으로 피드백 모임을 시작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이유로 모임원들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이동이 용이한 서울 지하철 3호선 언저리, 우리는 을지로역과 신사역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모였다. 첫 만남은 을지로 골목에 숨은 조용한 카페에서였다. 자기소개를 하며 어떤 글을 쓰는지 처음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동안, 나는 나와 모임원 사이에 은근하게 걸쳐진 교집합 같은 것을 느꼈다. 경계선이 분명한 교집합이 아니라, 구름처럼 윤곽선이 흐릿한 오묘한 교집합이랄까. 지은 님으로부턴 은유를 통해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문장의 사용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상덕 님과는 내 안에 있는 관념적 세계를 말하는 글쓰기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고, 한솔 님의 글을 보면서는 예전에 한창 미술과 관련한 글과 리뷰를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교집합을 구름으로 비유했듯, 닮은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전혀 달랐다. 나는 사랑이나 타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서 나와 나의 내면에 집중해 글을 쓰는 반면, 지은 님은 그 자신으로서 타인을 향한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글쓴이였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그대로 말하고 싶어서 은유나 상징을 끌어와 글을 쓰는데, 상덕 님은 관념적인 글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며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살펴보는 글을 쓰고 계셨다. 작품에 관한 리뷰를 쓸 때 작품을 감상하며 느낀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사사로운 글을 쓰던 나와 다르게, 한솔 님은 주제 하나에 핀을 꽂아 일관성 있게 사유의 흐름을 깔끔하게 완결시키는 글을 쓸 수 있는 분이었다. 모임원들이 가진 장점을 이해하며,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귀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이렇게도 시도해 볼 수 있구나 하며 더 구체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과 함께하며 익숙하나 새롭게, 낯설기보단 섬세하게 내 글을 성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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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드백 받은 내용을 정리한 메모장 일부

 

 

글은 글쓴이의 내적 삶을 투영하지 않은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다보면 글로 쓰게 되는 관심사로 얘기가 뻗어나갔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쓰는 사람들, 그들이 쓰는 글의 곁에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 좋았다. 내 시야에 걸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임 후반부에는 내적 에너지가 고갈돼서 무언가를 쓰고 말하는 게 어려운 상태였는데, 풍성한 곁가지 같은 이야기들이 나의 텅 빈 속을 채워주곤 했다. 한편으론 내가 고갈되었던 만큼 모임원들에게 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그들만큼 내가 나의 것을 주었나, 싶은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랄까. 이상하게 나는 나와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만큼 미안한 마음도 드는  사람이라, 그만큼 함께해주어 고맙다고 모임원들에게 다시 얘기해주고 싶다. 모임 끝자락에 남은 여러 마음을 기억하며, 다음에는 좀 더 반짝이는 생각과 마음을 잘 챙겨서 쓰는 사람들을 만나야지, 그런 다짐을 괜스레 해본다.


아, 예감했다던 변화는 실제로 일어났다. 마음속에서 마음을 말하던 글쓰기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거의 2년 반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숨어들던 내면의 우물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햇빛을 맞는 중이다. 벽 너머로, 나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작은 면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중이다. 에세이를 써보려고 하고, 시 창작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애를 쓰던 관념적인 글쓰기와는 다르게 보이는 그대로를 나의 언어로 말하는 이 가벼움, 생경함이 가득한 새로운 글쓰기가 마음에 든다. 지금에야 이렇게 얘기하지만, 변화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원래 쓰던 것을 계속 써야 하지 않나, 나 그대로를 고백한다는 게 어색하기만 한데 진솔한 에세이 쓰기가 가능할까, 이 방향이 내게 맞는 선택인 걸까, 잘할 수 있을까, 여러 의문을 겪어야 했다. 무수한 고민을 혼자 했다면 분명 방황했을 테고, 그만큼 새로운 변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매달 함께한 피드백 모임에서 내 글을 보여주고 다른 이들의 글을 접하면서 나눈 대화가 내 글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절대적인 답이 없는 고민으로 망설이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혼자 남아 쓰는 만큼 외로워지기 쉬운 작은 자리에서 벗어나, 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대화하는 다채로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다.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시국, 연말과 연초라는 마음 뒤숭숭해지는 시점에서 나는 잠시 소강상태다. 어떤 문장을 써도 마음에 안 들어서 사실 이 글도 굉장히 어렵게 쓰는 중이다. 문장을 쓰기 전에, 문장을 쓰는 중에, 문장을 쓰고 나서 마다 꾸준히 제기되는 질문. “나는 글을 왜 쓰지?” 이런 의문은 꼭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 때 더 또렷해진다. 글뿐만 아니라 나에게 직접 건네지는 의문 같아 석연치 않은 기분마저 든다. 별 쓸모없는 글을 쓰고 있단 생각이 들면 생각이 뚝 멈춘다. 어느 잣대 아래에서는 무용한 것이 되어버리는 슬픔, 그 충돌. 충돌 앞에서 쉽게 멈춰버리는 마음, 딱딱한 돌처럼 굳는 기분이 자주 든다.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것 같다.


이번 피드백 모임에서도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생각을 나눴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비로소 삶을 스스로 살아내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살아온 삶을 간직하고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모임원들에게 얘기했었다. 이 또한 진심이고 의미 있는 대답이었지만,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안 뭔가 충분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공허한 느낌, 왜 써야 하는지 굳이 해명하는 대답 같았달까. 그래서 모임이 끝난 후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새롭게 떠올린 답은 이렇다. 석연치 않은 마음만이 꾸준해도 나는 그냥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석연치 않은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며 뭐라도 써온 시간이 내 몸이나 영혼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는 특별한 이유를 가진 행위가 아닌, 본능적인 행위가 된 것이다. 글을 안 쓰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어서 글을 쓴다. 이런 얘기가 다른 이들을 설득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쥐고 흔들 만큼의 악력을 가진, 가장 단순하고 확고한 이유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쓰는 사람이라고, 피드백 모임의 가장 끝이 될 이 글에 나의 대답을 새롭게 남겨본다.


근래 잦아진, ‘쓰는 나’가 의심스러울 때 밀려드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잘 넘기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글로써 말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발화할 것을 찾아야 하니까. 내가 느낀 것을 문장으로, 사유로 만들어야 하니까. 떠올린 주제가 무엇이든 그게 나의 안팎에서 찾아낸 진심이기를 바라니까. 지금 쓸 수 없다면 나중에라도 써야 하니까. 그렇게 지속되는 삶은, 글을 쓰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 되어 버리니까. 이렇게 고백하다보니 내 안의 '쓰는 사람'이 나란 존재의 심지, 작지만 그 무엇보다 딴딴한 심지처럼 있는 것 같다. 이 발견이야말로 피드백 모임과 함께 맞이한 글의 변화보다 더 커다란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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